제목 | ■ 사순 시기만이라도 그분께로 / 사순 제2주간 토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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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 작성일2024-03-02 | 조회수125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사순 시기만이라도 그분께로 / 사순 제2주간 토요일(루카 15,1-3.11ㄴ-32) 러시아 박물관에 걸린 렘브란트가 그린 ‘돌아온 탕자’ 그림이다. 방탕 끝에 돌아온 작은애가 아버지 품에 얼굴을 묻고 있다. 누더기 옷, 다 해진 신발, 상처 난 발바닥은 그가 집 떠나 고통스럽게 산 모습이 여실하다. 머리는 막 태어난 아이마냥 삭발인데, 아버지의 따뜻한 사랑에 안겼다. 아버지모습에 옆의 큰아들은 어둡게 처리되어 있다. 얼굴에는 시샘과 분노가 인다. 아버지 모습에 불만일 게다. 아들을 안은 아버지 두 손은 서로 다르다. 왼손은 크고 강인해 세상 그 어떤 위험에서도 아들을 보호해 줄 손이다. 오른손은 작고 부드러워 마치 사랑을 섬세하게 품는 어머니 손이다. 집 나간 자식 기다리다 지친 아버지 얼굴 모습이 이제 안도감으로 자비롭다. 그러나 한쪽 눈은 눈물로 지샌 거의 실명이다. 그렇지만 눈가에는 사랑이 가득하다.
이렇게 작은애 모습이 우리 모습일 수 있으며, 동생을 용서 못해 받아들이지 못하는 속 좁은 큰애 모습 또한 우리다. 문제는 주님께서 우리 죄악을 헤아리시기에, 여기에 자유로울 이는 아무도 없을 게다. 그분께서는 죄 많은 우리를 늘 일으켜 세우신다. 그러기에 이제라도 이웃을 바라보는 우리 마음을 바르게 안고 가야 하리라. 이것이 곧 사랑뿐인 그분 마음이기에. 되찾은 아들 비유에서 충실하게 살아온 큰아들보다, 아버지 품에 안겨 참회의 눈물 흘리는 작은아들이 더 아름답게 보이는 건, 넘치는 그분 사랑이 그를 깨끗이 씻어 주기 때문일 게다. 누가 뭐래도 이 사순 시기는 참된 회개로 하느님을 만나야 한다. 이렇게 우리가 또 한 사람의 탕자임을 깨달을 때에야, 비로소 하느님의 그 한없는 사랑을 올바로 이해하리라. 지금도 그분은 우리를 기다리신다. 비록 우리가 사순 시기마다 회개한다지만, 매번 같은 죄 반복하고 후회한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당신을 찾는 우리를 기꺼이 맞으신다. 이 시기만이라도 그분을 꼭 기억하자. 그래서 고향의 오솔길처럼 포근한 아버지께 돌아가자. 우리가 가야 할 영원한 고향이니까.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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