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오직 사랑의 이름으로 오신 분 / 사순 제3주간 수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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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 작성일2024-03-06 | 조회수135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오직 사랑의 이름으로 오신 분 / 사순 제3주간 수요일(마태 5,17-19)
유다인들의 율법은 613개 조항에 이른다. 이를 거슬러보면 십계명이고, 다시 더 줄이면 하느님과 이웃 사랑, 마지막으로는 ‘작은 이 사랑’인 최후의 심판 조항이다. 그것은 하느님 자신을 온전히 내어 주시어 사랑 자체가 되셨기에. 그분 사랑 안으로 모든 율법과 예언서의 내용이 녹아들었기에. 법만으로 사는 시대는 지났단다. 이는 몸에 마음이 따라가지 않는 감동이 없는 삶이기에 그렇다. 사랑 실천을 통해 이웃과 함께 다 그분 사랑이, 계명의 근본이다. 이것이 그분 창조의 본래 의도였고, 이게 그분 보시기에 참 좋은 모습이었기에. 이것을 망각했기에 모든 게 엉뚱한 방향으로만 나아갔다. 단지 글자 그대로만 보려고, 숲은 못 보고 나무만 본 셈이다. 어떤 법이든 지켜야 할 건 ‘사람을 위해’ 존재해야 하리라. 사람을 법에 옭아맨다면, 그건 예수님의 참된 가르침이 아니다. 참된 율법은 해방과 자유를, 기쁨과 편안을 제공하리라. 이러한 율법이 ‘사랑의 계명’일 게다. 사랑만이 변화를 일으키리라. 소극적인 율법 준수를 ‘적극적인 실천’으로 바꾸는 것일 게다. ‘하지 말라.’라는 율법을 ‘하라.’라는 계명으로 만드는 거다. 사실 우리 일상에도 ‘하지 말라’라는 강압적인 게 너무너무 많다. 그 많은 ‘금지 사항’이 있음에도 현실은 나아지지 않는다. 사랑으로 다가가지 않기에. 그러니 사랑을 가슴에 담아야만 할 게다. 종교생활의 두 핵심에서 첫째는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둘째는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배우는 거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율법은 다 하느님 뜻이다. 우리는 그 뜻을 정확히 알아야만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게다. 예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내란다. 이것은 커다란 대원칙이다. 이를 하느님 뜻에 가장 맞게끔 생활에 응용해야 하리라. 그러나 율법 학자들은 이에 만족하지를 못해 추가 규율을 만들었다.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될 여러 금지 조항이 있다. 예를 들어, 불붙이기, 빵 굽기, 망치질, 바느질, 공공장소에서의 운반 행위마저도 금지했다. 따라서 안식일에는 돈벌이를 할 수 없기에, 가난한 이들은 안식일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나. 그러나 오늘 예수님 말씀은 모든 일에서 하느님 뜻을 찾으란다. 우리는 형식적, 기계적으로 계명을 지키려 하나, 어떤 일을 하든지 하느님 뜻을 먼저 찾아야만 한다. 만일 그렇지 않을 경우 우리역시 바리사이와 같은 위선과 형식주의에만 빠지게 될 게다. 하느님 본질인 사랑을 받아들이면 금방 환하게 바뀐다. 이 사랑 실천으로 산 우리가 먼 훗날 주님 앞에 갔을 때, 당신께서도 단지 사랑 질문만을 하시리라. 오직 한 가지, ‘너는 얼마나 사랑하였느냐?’라는 그 물음만을. 으뜸은 분명 사랑일 테니까. 율법의 완성은 곧 사랑의 완성이다. 내 존재 자체가 온통 사랑이 되는 것이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한 자 한 획도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게다. 예수님은 오히려 완성하러 오셨다. 오직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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