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사순 제3주간 금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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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 작성일2024-03-08 | 조회수128 | 추천수4 | 반대(0) 신고 |
[사순 제3주간 금요일] 마르 12,28ㄱㄷ-34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오늘 제1독서에서 호세아 예언자는 우리가 잘못된 길에서 벗어나 주님께로 돌아설 때, 그분께서 건네시는 은총과 축복이 얼마나 풍요롭고 좋은 것인지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이 되어 주리니, 이스라엘은 나리꽃처럼 피어나고 레바논처럼 뿌리를 뻗으리라. 이스라엘의 싹들이 돋아나, 그 아름다움은 올리브 나무 같고, 그 향기는 레바논의 향기 같으리라.”(호세 14,6-7)
생각만 해도 마음 든든하고 감사가 절로 우러나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은 대부분의 지역이 강수량이 부족합니다. 그럼에도 꽃과 나무들이 자랄 수 있는 것은 부족한 강수량을 채워주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지요. 그것이 바로 새벽녘에 내리는 풍부한 이슬입니다. 이슬이 맺혀봐야 양이 얼마나 될까 싶지만, 그 이슬 덕분에 나리꽃도, 올리브나무도, 무화과도 척박한 땅에서 생명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은 우리 삶도 마찬가지지요. 팍팍하고 힘겨운 우리 삶, 기쁘고 행복한 일보다는 슬프고 괴로운 일이 많아 메마르고 황량하게 느껴지는 삶이지만 그래도 살만하다고, 살아야겠다고 느끼는 건, 주님께서 우리 삶에 ‘이슬’과 같은 사랑을 내려주시기 때문입니다. 생각지도 않은 때에, 예상치 못한 놀라운 방식으로 어떻게든 힘든 상황을 이겨낼 수 있도록 힘과 용기를 주시고, 함께 하여주십니다. 그런 분은 오직 한 분 하느님 아버지 뿐이지요. 그러니 우리는 최선을 다해 그분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첫째 가는 계명’이 무엇인지 묻는 율법 학자의 질문에 ‘하느님을 사랑’하라 하십니다. 머리로만, 말로만, 겉으로만 사랑하는 ‘척’할게 아니라,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그분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시는 한없는 사랑에 조금이나마 보답하자면, 부족하고 약한 우리 인간은 ‘적당히’, ‘눈치 봐가며’해서는 절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죽을 힘을 다 해서, 내 모든 것을 온전히 내어드리겠다는 마음으로, 성심성의껏 해야 내가 그분을 사랑한다는 ‘티’ 정도가 날 뿐이니까요.
그 다음으로 강조하시는 게 ‘이웃사랑’입니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면 그가 좋아하는 것을 나도 좋아하게 되는건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그렇게 하면 그가 기뻐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가 기뻐하는걸 보면 나도 기쁘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하느님 사랑은 자연스럽게 나와 함께 살아가는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이어집니다. 그 이웃 한 사람 한 사람도 하느님께서 나만큼이나 사랑하시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가 그 이웃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기를 바라십니다. 근본적으로 이웃을 ‘남’으로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한 몸’이 있을 뿐, 그 분 안에서 우리는 서로 멀리 동떨어진 ‘남남’이 아니라 ‘하나’라고 여기는 겁니다. 그러면 이웃을 나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 됩니다. 어려운 이웃에게 적선하듯 이웃보다 우위에 서 있다는 태도로 ‘시혜’를 베푸는 식의 사랑이 아니라, 서로 동등한 위치에서 상대방의 마음을 깊이 헤아리며 배려하고 존중하고 아껴주고 내어주는게 가능해집니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가 실천하는 사랑이 완전해지지요. 그 사랑의 힘으로 하느님 나라 ‘안’에서 참된 기쁨을 누리며 살게 됩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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