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사순 제 3 주간 토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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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 작성일2024-03-08 | 조회수351 | 추천수3 | 반대(0) |
댈러스 성당으로 왔을 때 뉴욕에서 신부님들이 같이 왔습니다. 먼 여정 동행해 준 신부님들이 고마웠습니다. 신부님들은 사제관의 시설들도 점검해 주었습니다. 자리를 많이 차지하는 사제관의 컴퓨터를 치우고, 저의 노트북으로 다시 설치해 주었습니다. 엉클어져 있던 선을 정리해 주었습니다. 속도가 느려서 불편했던 인터넷을 빠른 속도로 업그레이드 해 주었습니다. 회사에 전화를 하니 새로운 장치를 배달해 주었습니다. 저는 냄새에 둔감한데 신부님 한분이 가스 냄새가 난다고 점검해 보라고 했습니다. 점검하니 가스가 조금 새고 있었습니다. 다행이 고칠 수 있었습니다. 텔레비전도 잘 나올 수 있도록 연결해 주었습니다. 청결을 위해서 화장실에 비데를 설치하면 좋겠다고 해서 그것도 설치하였습니다. 열쇠로 열던 문도 번호 키로 바꾸었습니다. 요즘 번호 키는 원격으로 문을 열고 닫을 수 있는 기능이 있었습니다. 신부님들의 도움으로 댈러스에 온지 3일 만에 제가 바라는 것들이 해결 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신부님들이 저의 성격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저와 함께 지낸 시간들이 많기 때문에 제가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결혼한 부부가 잘 지낼 수 있는 5가지 방법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다투고 싸운 날일지라도 한 침대에서 잠을 자면 좋다고 합니다. 그날의 피로는 그날에 풀자는 말이 있듯이 논쟁과 다툼이 있었을지라도 풀고 잠자리에 들면 좋다고 합니다. 기념일을 잘 챙겨 주는 것도 좋다고 합니다. 정성이 담긴 선물을 준비한다면 배우자는 감동할 것입니다. 결혼 25주년을 기념하면서 함께 피정을 가는 부부를 보았습니다. 선물은 오늘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따뜻하게 보내는 기분 좋은 말도 선물이 됩니다. 부부가 같은 취미를 가지는 것도 좋다고 합니다. 책을 읽는 것도, 등산을 하는 것도, 골프를 치는 것도, 봉사활동을 하는 것도, 기도하는 것도 부부가 함께 하면 더 많은 시간을 즐겁게 보낼 수 있습니다. 느낌을 표현하는 것도 좋다고 합니다. 부부라고 할지라도 서로가 바쁘게 지내다보면 무심하게 지낼 수 있습니다. 허리가 아픈데 다리를 주물러주면 큰 효과가 없을 것입니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대화도 좋지만 감정과 마음을 표현하는 대화는 부부의 관계를 풍요롭게 할 것입니다.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해주면 좋다고 합니다. 예전에 이런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오랜 불화로 결국 헤어지는 노부부가 마지막으로 식사를 하면서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게 닭의 날개를 주었습니다. 할머니는 화를 내면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당신은 헤어지는 마당에도 내가 실어하는 닭 날개를 주네요.” 사실 할머니는 닭의 가슴살을 좋아했지만 할아버지가 좋아할 것 같아서 싫어하는 날개를 먹었다고 합니다. 할아버지도 날개를 좋아하지만 할머니가 날개를 좋아할 것 같아서 싫어하는 가슴살을 먹었다고 합니다. 행복한 부부생활은 상대방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해 주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기도하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하나는 바리사이파의 기도이고, 다른 하나는 세리의 기도입니다. 바리사이파는 기도할 때, 자신이 무엇을 하였는지를 이야기하였습니다. 단식하였고, 봉사하였고, 십일조를 충실하게 바쳤고, 율법을 잘 지켰고, 죄인들과 함께하지 않았다고 하느님께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렇게만 살아도 그다지 나쁜 것 같지 않습니다. 사실 그렇게 살기도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른 하나는 세리의 기도입니다. 세리는 자신이 무엇을 하였는지를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 무엇을 얼마나 잘하였는지, 무엇을 얼마나 잘못했는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을 아시고, 판단하시는 하느님께 자비를 청하였습니다. 나의 행위로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하심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세리의 기도를 더 높게 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과부의 봉헌’을 하느님께서는 기뻐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세리의 겸손한 기도’를 잘 들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가셨던 예수님을 봅니다. 묵묵히 그분의 십자가를 지고 갔던 시몬을 봅니다. 예수님 얼굴에 흐르던 피와 땀을 닦아 드리던 베로니카를 봅니다. 십자가에 매달려 ‘주님 저를 기억해 주세요.’라고 했던 죄인을 봅니다. 신앙은 내가 원하는 것을 하느님께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나의 삶을 통해서 드리는 것입니다. “정녕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제물이 아니라 신의입니다. 번제물이 아니라 하느님을 아는 예지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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