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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일어나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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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4-03-12 조회수117 추천수4 반대(0) 신고

저에게 매주 에세이집을 보내주시는 전 삼성 SDI연구소장님이 계십니다. 지금은 정년 퇴직하셨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왕성하게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그분이 보내주시는 에세이집을 보면 대부분이 성공에 대한 것이고 이기는 것을 주로 이야기 하십니다. 성취, 목표 달성, 어찌하면 이길 수 있을까? 등등과 같은 것이 주로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저의 길과는 좀 거리가 있습니다. 에세이집을 1000명에게 보내 주시는데 4개 그룹으로 나누어서 보내신다고 합니다. 저는 소장님으로 부터 1:1로 받습니다. 1000명의 대상자 중에는 구 손욱 사장님과 같은 분들도 포함되어 있고 대부분이 삼성에서 일등 혹은 자신이 mit 출신이고 서울대 출신이기에 그와 격이 같은 사람들에게 보내신다고 하고 그런 인맥 관리를 통하여서 정년 퇴임 후에도 일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주로 외부 강의를 하신다고 해요. 앞서 말씀드린대로 저와는 좀 거리가 있어서 보내신 에세이를 받기는 하는데 열렬한 Follower는 아닙니다. 오히려 소장님의 글을 좀 하대하는 경향이 있고 잘 보려 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너무 세상에서 이기는 것에만 집중되어 있고 자기 자랑으로 일관된 것 같아 좀 읽기가 거북하였습니다. 보내준 분의 성의가 있어서 받기는 하지만 그러나 ..입니다. 

 

그런데 제가 어제도 말씀드렸는데 제가 잦은 이직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원인이 무엇일까? 여러가지가 있겠으나 균형감각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이 들어요. 정의 진리, 저것은 잘못된 것이야!!, 소장님은 너무 이기는 것만 치중해 ..자기 자랑만 ..등등과 같은 것.. 그리스도 관점에서는 저것이 옮은 것일까? 하면서 그쪽으로 눈을 돌리지도 않고 쳐다 보지도 않는 내 모습입니다. 그런 저의 Bias된 모습, 경도된 모습이 주변과 관계를 단절 시킵니다. 균형 감각이 없이 경도된 모습으로 살아가다 보니 선택의 폭이 줄어드는 것이고 역으로 생각하면 균형 감각이 깨지면서 오히려 내가 옳아 그런 바리사이와 같은 인물로 변해 간다는 것입니다. 앞서 소장님의 것도 받아 들이고 인맥관리 하는 것도 배우고 어찌 하면 세상에서 어려움을 극복하는지 ? 그런 세상사 관점에서 지혜를 구하는 것..나의 생각과 사상이 나와 다르다고 하여서 그것을 배격하는 내 모습으로 인해 잦은 이직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편향된 시각이 결국은 인생의 선택의 폭을 좁게 만들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힘들게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그 편향된 시각을 가진 사람이 나옵니다. 벳사이다 못에서 수년동안 누워 있는 사람을 봅니다. 못에서 바람이 불 때 처음 들어가는 사람에게 치유가 일어난다는 것을 알지만 자신은 누워 있는 신세로 들어갈 수 없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합니다.  구원자이신 예수님이 앞에 나타나셨는데도 불구하고 알아보지 못하고 자신을 한탄하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만을 바라보고 자신이 세운 논리만 바라보고 있기에 주님을 알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을 버리고 주님을 바라보는 눈이 있었다면 그는 연못에 들어가는 것만이 전부로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전에 작은 예수회에 평생을 누워 지내시던 수녀님이 생각이 납니다. 수녀님은 평생을 누워 지내셨지만 그러나 그분은 예수님 안에서 사람들을 포용하시고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로 일관 하신 분이고 또 자신이 가진 재능, 그림 그리는 것으로 세상과 소통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수녀님을 뵐 때면 항상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세상을 포용하신 분이 수녀님이셨습니다. 정의 진리는 사랑과 같이 해야 빛이 나는 것입니다. 저에게 부족한 것이라면 정의 진리만 집중했지 사랑, 포용력이 부족한 것이 지금의 잦은 이직과 백수 생활의 연속입니다. 나를 하대 하는 말이 아니라 Fact입니다. 나의 명암을 바로 볼 수 있고 주변에 조화롭게 대응해 나가는 것이 나의 앞으로의 길인것 같습니다. 주님께서 공생활을 마치시고 유다의 배반으로 성전 사제들에게 팔려 가는데 그 붙잡히시는 순간 베드로는 칼을 들어서 그들의 귀에 공격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자신을 잡아 가려는 사람을 포용하신 분이셨습니다. 자신을 잡아가려는 사람들까지도 포용하신 예수님의 사랑의 마음을 나도 본 받고 내 생활 속에서 주님과 같이 사랑의 마음으로 포용하고 받아들이겠습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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