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또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의 이 거룩한 곳과 우리 민족을 짓밟고 말 것이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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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 작성일2024-03-23 | 조회수94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어찌해야 우리는 천국에 갈 수 있을까요? 평생 고민 고민해가면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찌 생각하면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수고 수난 받으시고 돌아가시고 부활 승천하셨습니다. 수고 수나의 원인은 무엇일까? 나는 착한 사람이고 세상이 못된 사람이기에 세상이 변해야 예수님은 수고 수난을 격지 않고 세상은 천국으로 변해 갈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 자체가 문제입니다. 예수님의 수고 수난의 원인은 영적으로 눈이 떠있지 않아서 그런 것입니다. 주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했다면 예수님께서 수고 수난을 격지 않았을 것입니다. 내 편하기만 좋은 것이 인간입니다. 그래서 내가 변하기가 어려운 것이고 세상이 변한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것입니다. 진정으로 변해야 할 것은 나 입니다. 묵상 글을 쓰면 쓸수록 더욱 크게 보이는 것이 나의 허물이고 나의 부족함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자비심에 의탁하게됩니다. 이것이 하늘 나라에서 통용되는 언어인데 이승에서 나의 허물은 않보이고 나는 천사고 세상이 악이라고 판단하는 것 자체가 아직 갈길이 먼것입니다. 거지 라자로와 부자의 우화에서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거지는 왜 거지로 변했을까? 그런데 왜 거지이기에 천국간것일까? 무능한 것이 거지인데 왜 천국에 가 있는 것일까? 세상것 보다는 하느님의 것을 우선하기에 물질적으로 항상 부족한 것입니다. 영적인 가난함입니다. 하느님이 없으면 살수 없다는 것을 항상 인지하면서 살아가는 인물이 거지 라자로 입니다. 항상 영적으로 체워 달라고 기도하면서 당신의 자비를 갈구하는 사람이 거지 라자로 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그 영적 가난함을 영구히 체워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부자는 모든 순간이 나 우선하고 나의 부족함을 내 스스로 체우고 호위호식하면서 주변을 바라보지 않고 나 우선한 마음의 소유자 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과 주변 이웃과 단절의 역사를 써간 것입니다. 영적인 가난함에 대한 인식 자체가 없는 사람이 부자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하느님 부재의 상황 속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복음에서 주님을 죽이려는 근본 목적은 영적인 가난이 없이 현재에 호위 호식의 삶을 포기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귀찮은 사람 예수가 죽으면 끝이라는 그런 인식이 그들 안에 생각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참 중요한 것은 영적인 인식이 우선하였으면 좋겠습니다. 난 가난한 사람입니다. 나를 채워 줄 분은 주님입니다. 이것의 시작은 내 안에서 성찰이 우선하고 나의 부족함을 채워주실 분은 예수님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자비심을 영구히 청해 봅니다. 주님은 나의 모든 것입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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