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내가 그분을 여러분에게 넘겨주면 나에게 무엇을 주실 작정입니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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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 작성일2024-03-27 | 조회수105 | 추천수3 | 반대(1) 신고 |
이 곳 묵상글란에 같이 글을 올리는데 천주교에 대해 아주 무서운 말을 썼습니다. 그런데 무서운 글을 올리시는 분은 이상한 패턴을 보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악한 행동을 공개적으로 사람들 앞에서 보이고 사람들로 하여금 공분을 사게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공분을 사게 하고 나서 자신의 글은 삭제를 합니다. 그러고 나서 언제 자신이 그랬냐는 듯이 평범한 글을 올립니다. 꼭 그 다음의 행동은 어느 사제의 글을 옮기면서 다시 자신은 성스런 사람으로 행동하는 사람으로 탈 바꿈합니다. 나는 깨끗한 사람으로 글을 올립니다. 이 악한 사람을 어찌 해야 하나요? 이 악한 사람을 생각하다 보니 오늘 복음에서 유다의 행동이 보입니다. 유다가 주님을 팔아 넘기는 행동을 합니다.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이곳 묵상글은 자정 능력이 없는 곳입니다. 악마들이 글을 올려도 누구 하나 잘못한 것을 바로 잡아주는 사람이 없는 곳이 이곳 묵상글입니다. 피해는 우리 평신도들이 모두 받는 곳이 이곳 묵상글입니다. 어제 마귀 같은 글을 올린 사람도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자신의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자신의 마귀 같은 글은 다시 삭제 하였습니다. 공분이라는 공분은 모두 사고 나서 또 자신은 선한 어린양으로 변장해서 다시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묵상글의 현주소입니다. 책임지는 사제가 없어서 그렇습니다. 그리고 마귀 같은 글을 올린 사람을 옹호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시간이 2000년전이나 지금이나 같습니다. 착한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어가야 하는 것이 2000년전이라면 지금은 이름은 천주교 신자라고 하면서 묵상이라는 글을 통해서 마귀짓을 하는 사람도 지금도 있고 그것을 알면서 모르는척 하면서 조용히 넘어가는 세상이 지금 천주교 묵상란의 현실입니다. 자신의 악한 행실은 수없이 보이고 나서 그 글은 삭제하고 나서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거룩한 사람 처럼 글을 올리는 분이 지금 이곳 묵상글란에 있습니다. 그분의 행동 패턴은 잘 압니다. 그의 이런 악한 행동은 자주 습관처럼 보입니다. 어제는 천주교 신부들을 아주 심하게 공격을 하더라구요. 이분의 글을 읽고 나서 공분한 분들이 아주 많이 있었습니다. 이분을 그대로 활동하게 놓아 두는 것이 옳은 것인가요? 오늘 복음에서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어제 이 묵상글란에 그 악한 마귀와 같습니다. 예수님을 팔아 넘기는데 악당들과 Deal을 합니다. 내가 예수를 팔아 넘기면 너는 나에게 무엇을 줄것이냐 하면서 Deal을 합니다. 그렇게 Deal을 하고 나서 주님과 같이 식사를 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라 제자들 앞에서 심란한 마음으로 말씀하십니다. 나의 제자들 중에 나를 배반할 사람이 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마지막까지 그를 회개토록하기 위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마귀 유다는 능청스럽게 나는 아니지요 물어봅니다. 앞서 굿 뉴스에 우리 천주교를 비난하고 나서 자신의 글은 삭제하고 나서 또 다시 자신은 성스런 사람처럼 행동하는 그 사람과 같습니다. 유다가 한 말이 너무 기가 찹니다. 내가 그 스승을 팔아 넘기면 나에게 무엇을 줄것인가? 어제 이 묵상글란에 천주교 신부와 수녀들을 아주 심하게 비난하던 그분과 유다의 얼굴이 서로 비슷합니다. 그리고 나서 자신의 글은 삭제하고 나서 다시 순한 어린 양으로 변해 이곳 묵상글란에 글을 올립니다. 또 이 곳 묵상자라는 사람들은 수없이 많이 그의 글을 보면서 감탄을 합니다. 이게 우리 천주교의 단면입니다. 가리웃 유다가 2000년전에 예수님을 팔아 넘겨서 예수님을 사형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그것을 보면서 나쁜 유다 저주 받을 유다 하면서 유다를 욕합니다. 그러나 내 앞에 나타난 유다와 같은 사람에게는 아무도 잘못을 이야기 하고 바로 잡으려고 하는 분들이 없었습니다. 정의감과 사랑입니다. 분명히 잘못한 것은 바로 잡아야 합니다.하늘 아래 주님이 보고 계신데 보고 계신 눈을 내가 손으로 않보이게 한들 그것이 감추어 질것인가? 아닙니다. 어제 천주교를 비난한 분에게 누구하나 공분한 분이 있었나? 그리고 그분의 활동을 못하게 행동한 분이 있었나? 강건너 불구경하는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이 곳 묵상글에 참여하신 분들의 대부분은 자신이 거룩한 사람으로 사람들로부터 평판을 받는 것이 목적이지 주님의 구원과는 거리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지금의 행동이 2000년전의 유다와 같습니다. 유다를 죽일놈 이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행동은 유다와 같이 행동하면서 사람들 앞에서는 아주 깨끗한 사람처럼 보이려고 하는 이중적인 태도가 지금 현대 사람들의 모습과 같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을 잊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거룩한 사람처럼 보일지라도 주님은 분명히 알고 계십니다. 구원은 명확합니다. 진인사 대천명과 같습니다. 예수님도 인간의 구원을 위해서 극형인 십자가의 죽음을 맞이하신 분입니다. 그렇게 해서 인간이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인간도 그에 맞는 행동이 있어야 구원이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보혈로 구원을 얻는 다고 하면서 나의 행동은 파렴치한과 같이 행동을 하면 구원은 없는 것입니다. 진인사 대천명과 같이 최대한의 나의 행위가 있어야 합니다. 천국이 그렇게 쉽게 가는 곳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매번 사순절이 되면 유다를 욕하지만 그러나 그를 욕하는 나도 유다일 가능성은 99%입니다. 왜냐하면 나와 주님의 관계가 3인칭 관찰자 시점이기에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또 다른 세상의 것입니다. 나의 기분에 따라서 아름답기도 하나 어느 순간에는 꼴도 보기 싫은 것일 수 있습니다. 왜 ? 그분이 나의 중심이 아니라 나의 소유물이기에 그런 악행이 나오는 것입니다. 유다가 한 말이 이를 증명합니다. 내가 그를 팔으면 나에게 무엇을 줄것인가? 우리 모두 유다일 수 있습니다. 상황이 그렇게 조성이 되지 않아서 그렇지 그 상황으로 놓이게 되면 유다와 같이 행동합니다. 이를 명심해야 합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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