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주님 부활 대축일 파스카 성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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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 작성일2024-03-30 | 조회수455 | 추천수5 | 반대(0) |
먼저 오늘 하느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나시는 세례자분들에게 축하를 드립니다. 세례는 두 가지 은총을 우리에게 줍니다. 하나는 지난날 내가 범했던 모든 잘못을 용서받는 은총입니다. 다른 하나는 이제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은총입니다. 세례를 받은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모두 형제와 자매가 되는 것입니다. 원래 세례는 정화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세례는 회개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교회는 세례를 하느님의 은총이 드러나는 성사라고 이야기합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요르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정화와 회개의 상징이었던 세례는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면서 품격이 올라갔습니다. 교황님께서 우리 성당을 방문해 주면 우리 성당의 기쁨이 더 크듯이,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면서 세례는 죄를 용서받는 성사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면서 세례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성사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부활 성야 미사의 독서와 복음은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보시니 좋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하느님을 닮은 사람을 창조하셨고, 사람이 하느님의 뜻을 따라서 세상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뜻을 따라서 100세에 얻은 아들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려고 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기꺼이 자식을 바치려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아브라함을 축복하셨고, 후손이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많아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느님만을 믿고 광야를 건너온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 바다를 건너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를 거센 폭풍우에서 구해 주시는 분은 오직 하느님이십니다. 그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죄와 잘못으로 고난과 고통이 다가왔지만, 하느님께서는 자비하시니 우리의 눈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 주십니다. 유배지에서 고통받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고향으로 이끌어 주십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하느님이 되십니다. 부활 성야 독서와 복음은 ‘빈 무덤’에서 끝이 납니다. 그리고 천사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자렛 사람 예수님을 찾고 있지만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 그래서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 보아라, 여기가 그분을 모셨던 곳이다. 예수님께서는 전에 여러분에게 말씀하신 대로 여러분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가실 터이니, 여러분은 그분을 거기에서 뵙게 될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무덤에서는 만날 수 없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삶의 현장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말씀을 선포하셨던 곳, 표징을 보여 주셨던 곳 갈릴래아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부활은 새로운 탄생이 아닙니다. 부활은 머나먼 곳으로 떠나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은 절망에서 희망으로 일어서는 것입니다. 부활은 슬픔에서 기쁨으로 일어서는 것입니다. 다시금 허리띠를 동여매고 주님과 함께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입니다. 이제 십자가는 더 이상 치욕과 굴욕의 상징이 아닙니다. 십자가는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 주는 구원의 열쇠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12명의 제자가 시작한 하느님 나라 운동이 2000년 역사를 이어온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하나는 ‘십자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몸소 십자가를 지고 가셨습니다. 초대교회의 많은 신자는 십자가를 받아들였습니다. 다른 하나는 ‘부활’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던 예수님께서는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한 제자들은 두려움에서 담대함으로, 절망에서 희망으로, 슬픔에서 기쁨으로 부활하였습니다. 아픈 사람을 고쳐주고, 마귀 들린 사람을 치유하고, 복음을 선포하였습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은 환상입니다. 씨를 뿌리지 않고 열매 맺기를 바라는 것과 같습니다. 교회의 위기는 재물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조직이 잘못되어서가 아닙니다. 십자가 없이 부활하려는 욕심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외면하는 교회는 언제나 위기를 겪었습니다. 부활이 없는 십자가는 고통일 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집트에서 고통받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세를 보내셔서 약속의 땅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교회는 언제나 가난한 이들의 아픔에 함께해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부활의 삶입니다. 오늘 세례를 받으시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신 분들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알렐루야!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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