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내일의 더 멋진 부활을 / 부활 팔일 축제 내 월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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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 작성일2024-04-01 | 조회수128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내일의 더 멋진 부활을 / 부활 팔일 축제 내 월요일(마태 28,8-15) 부활은 그리스도교 신앙 핵심이다. 3세기까지 초까지만 해도 예수 부활 대축일만 지냈으나, 12세기부터는 부활 축제를 8일에서 성령강림까지 7주간을 부활시기로 정했다. 파스카 축제와 연관된 부활 대축일은 해마다 다르다. 그분은 파스카 축제 전날 돌아가셨고 축제 다음 날 부활하셨다. 그래서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춘분 지난 첫 보름 다음의 첫 주일을 부활 대축일로 했다. 이날부터 신비가 완성되는 성령강림까지인 50일 동안 부활 축제를 지내는 것이다. “두려워하지 마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하필이면 왜 갈릴래아로 가시길 바라셨을까? 거기가 그분 공생활의 시작이었으니까. 땅은 비옥했지만, 대부분 가난한 소작인으로 힘들게 살았으나 그분 삶이 오래 깃든 마음의 고향이었다. 그러기에 제자들은 이제 다시 정든 갈릴래아로 가야만했다.
우리는 주님 이끄심으로 이 부활의 은총을 그저 바라는 것만은 아닌지? 당시만 해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맞는 여러 부류가 있었다. 신앙으로 믿는 여인들, 의심하는 경비병들, 그리고 이를 적극적으로 은폐하려는 수석 사제들이다. 마음이 순수하지 못하면, 부활의 신비는 없을 게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당신 사랑을 갈망했던 여인들에게만 드러내셨다. 이는 그분만의 은총이다. 예수님을 만나고자 하는 이들, 그 부활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이들에게만 주어지니까. 이렇게 부활은 모든 이에게 기쁨이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 부활을 진정 믿을까?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게 참 기쁨으로 다가오고 있을까? 부활은 꼭 죽어야만 빈 무덤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그분의 부활을 믿는 우리는, 일상에서 이 부활을 체험해야만 한다. 그러기에 두려우면서도 기쁜 마음으로 제자들에게 달려가던 여인들처럼, 일상에서 부활의 삶을 살자. 그리고 이 기쁜 소식을 그분께서 그토록 사랑한 어둠과 절망에 빠진 소외된 이들에게 달려가 전하자. 그렇지만 부활을 맞이하는 우리는, 아직도 마냥 두려워 ‘설마!’하며 그냥 지나쳐버리는 건 아닌지? 성탄 판공 후 처음으로 고해소 문을 통과의례로 지나쳤는지도 모르겠다. 장엄한 미사에다 교구장님의 담화가 나오고, 알렐루야 소리가 이곳저곳서 나오니 그저 덩달아 악수만 하는지도. 아니면 그건 지금의 기쁨이 아닌, 먼 훗날 죽음 후의 그 무언가일 거라면서, 아예 깊은 묵상마저 관두고픈 마음일 수도. 그러면 부활은 단지 성경에만 나오는, 이야기에 불과할 게다. 성경에 나오는 부활은 팩트이다. 그래서 부활 이야기가 이천년 전의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진다. 우리는 내일의 더 멋진 부활을 확실히 믿는 참된 신앙인이다. 부활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하시는 은총이다. 부활은 그때는 물론,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에게 일어나는 아주 소중한 팩트다. 부활 없는 성탄은 없고 기쁨 없는 부활은 아예 생각조차 못한다. 그러기에 부활은 기쁨이요 신비의 믿음이다. 그리고 부활은 어제도 있었고 내일도 우리에게 반드시 일어나리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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