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부활 팔일 축제 화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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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 작성일2024-04-02 | 조회수144 | 추천수7 | 반대(0) 신고 |
[부활 팔일 축제 화요일] 요한 20,11-18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
오늘 복음에는 부활하신 주님을 가장 먼저 목격한 증인인 ‘마리아 막달레나’가 등장합니다. 그녀는 일곱이나 되는 마귀에 들려 삶이 파탄 직전까지 갔다가, 예수님을 만나 마귀를 쫓아내고 치유의 은총을 입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풀어주신 큰 사랑과 자비에 힘 입어 죽는것 만도 못한 삶,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었던 삶에서, 자기 존재의 이유와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는 삶, 참된 사랑의 기쁨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삶으로 넘어갈 수 있었지요. 이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남은 생을 오롯이 그분께 바치기로 결심하고 실행합니다. 자신이 가진 재물을 아낌없이 예수님께 봉헌할 뿐 아니라, 예수님 일행과 함께 다니면서 복음선포 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돕고 봉사하는 일에 최선을 다한 겁니다.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앉으나 서나 예수님 생각’이었습니다. 그녀의 삶에서 예수님을 빼면 아무 것도 남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그랬기에 예수님의 죽음은, 그분께서 더 이상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다는 ‘부재’는 그녀에게 너무나 깊은 슬픔이자 절망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그랬던 마리아가 그토록 사랑하고 그리던 예수님께서 눈 앞에 계시는데도 그분이 누구신지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녀의 눈이 편견과 고정관념에 가려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셨다’는 슬픔에 완전히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멀쩡히 살아서 자기 눈 앞에 서 있는 사람이 예수님일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것이지요. 그런 그녀에게 예수님께서 ‘왜 우느냐’고 ‘누구를 찾느냐’고 물으십니다. 이는 마리아에게 하신 질문일 뿐만 아니라, 살면서 고통과 시련을 마주할 때, 그래서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지 않는다는, 그분께서 나를 사랑하시지 않는다는 생각에 빠져 슬퍼하고 괴로워하는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당신이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는데, 항상 변함없이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시는데 왜 슬픔과 절망에 빠져 괴로워하느냐는 겁니다.
그러면서 애정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마리아야!”하고 그녀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우리 말로는 ‘마리아’라고 번역되었지만, 원래 말인 아람어로는 ‘마리암’하고 부르셨을 겁니다. 그러자 마리아는 즉시 자기 이름을 불러주신 그분이 그토록 보고싶던 예수님이심을 알아봅니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그녀의 이름을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비천한 여인 취급하며 무시하지 않고 그렇게 온전히 이름으로 불러주시는 분, 짜증이나 사적인 욕망이 담긴 목소리가 아니라 순수하고도 완전한 사랑을 담아 불러주시는 분은 예수님 밖에 없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사랑의 부르심에 “라뿌니!”하고 응답합니다. 사랑과 존경을 가득 담은 이 호칭을 오늘 복음에서는 ‘스승님’이라는 다소 무미건조한 언어로 번역하지만, 이는 제자들이나 다른 사람들이 예수님을 스승으로 여겨 부르는 호칭인 ‘라삐’하고는 다릅니다. ‘라삐’는 상대방을 존경하기는 하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격식을 차리고 부르는 호칭이라면, ‘라뿌니’는 아이들이 좋아하고 친근감을 느끼는 선생님을 ‘oo쌤~~’하고 부르는 것처럼 존경과 사랑, 친밀함을 가득 담아 부르는 ‘애칭’이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그렇게 부르며 반가운 마음에, 이제는 예수님을 놓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 그분을 꼭 붙들었을 겁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당신을 더 이상 붙들지 말라고 하십니다. 마리아의 애틋한 손길을 매몰차게 뿌리치시는게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라면 그분을 자기의 사적인 기대와 욕망으로 붙잡아두려 하지 말고, 그분의 마음과 뜻에 붙들린 사람,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게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주님의 ‘바짓단’을 잡고 늘어지는게 아니라, 그분의 뜻과 가르침을 마음 속에 단단히 붙잡고 실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의 부활을 가장 먼저 체험한 마리아에게 맡겨진 소명이자, 주님 부활의 기쁨을 누리는 우리 모두에게 맡겨진 소명입니다.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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