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엠마오 길을 걷는 우리는 / 부활 팔일 축제 내 수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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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 작성일2024-04-03 | 조회수156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엠마오 길을 걷는 우리는 / 부활 팔일 축제 내 수요일(루카 24,13-35) 예수님 제자 두 사람이 엠마오로 가고 있다. 말이 고향이지 달리 갈 곳이 없어서 마지못해 간다. 스승은 사형수로 몰려 비참한 죽음을 맞았다. 한마디 항변도 못한 서글픔에 그들은 그렇게 가고 있다. 인생무상이랄까, 삶의 서글픔이랄까, 그런 감정을 지녔을 것이다. ‘스승은 나를 속였고, 나에게는 희망이 없다. 나는 이제 모든 것을 잃었다.’ 저마다 신세 탓 하면서 걷고 있다. 그렇게 그들은 스승 예수님을 원망하며 걸었을 게다. 그렇지만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이렇게 우리 인생길의 동반자로 엠마오 여정을 재현해 주신다. 우리가 절망에 빠져 시름에 젖어들 때 그분께서는 나의 이웃을 통해 곁으로 다가오시리라. 또한 당신을 향하는 내 삶을 빌려 또 누군가에게 부활하신 주님으로 동반자 되어 다가가실 게다. 그러니 인생길에서 만난 이, 그 누구라도 결코 소홀히 대해서는 안 된다. 주님께서 이렇게 우리가 만나는 이들 안에 현존하시기에.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걸었던 신앙의 길은, 우리가 걷는 길이기도 하다. 주님 없이 사는 인생은 절망적이다. 또한 그 주님은 언제나 낯선 이로 남아 계시리라. 그러면 주님을 모시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제자들이 예수님을 알아 뵌 곳은 빵을 나누는 성체성사 안에서였다. 적어도 우리가 세끼를 나눌 때만이라도 그분께서 우리 안으로 오심을 체험해야 할게다. 우리가 빵을 나눌 때 그분께서 정성껏 마련하신 최후의 만찬과 그분께서 함께하심을, 기억해야만하리라. 이처럼 눈으로는 예수님을 직접 뵙지는 못해도, 우리에게는 그분을 가장 잘 증언할 수 있는 성체성사가 있다. 사실 많은 이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주님의 식탁, 곧 미사 중 성찬의 전례를 통해 만날 수 있단다. 그분만을 믿기에 그럴 게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지 이천 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현존을 성체성사 안에서 체험한다. 이제 부활하신 주님은 과거의 그 역사적인 한 인물만이 아닌, ‘지금 여기’에서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이시다. 우리도 성체성사를 통해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우리 가운데 모시면서 굳건한 믿음으로 살아가자. 그렇게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며 삼위일체이신 그분과 함께하는 믿음을 갖자. 그러면 나그네처럼 해 저물 때 길을 걸어가야 하는 공동체, 천상을 향해 나아가는 교회는 늘 그분을 기억할 게다. 때로는 살다 보면 마음을 닫고 싶어질 때도 있다. 그러나 포기는 삶을 더욱 실망스럽게 만들 뿐이다. 이때 우리는 엠마오의 그 길에 ‘동반자’ 되어 주신, 부활하신 예수님을 떠올리자. 살면서 모든 이야기를 믿는 이들은 아마 없을 게다. 실제로 어떤 일 겪은 이가 전하는 체험조차 반신반의하는 우리이다. 그렇지만 진리의 말은 닫힌 이의 마음을 연다. 예수님 부활을 체험한 제자들은 스승님이 일러 준 진리를 그제야 믿었다. 그들은 부활하신 스승을 만났다. 엠마오 제자들도 같은 체험이다. 우리가 미사 시 성체 모실 때마다 되풀이하는 신비이다. 예수님 부활은 단 한 번뿐인 역사적 사건이지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매순간 우리 삶으로 들어오신다. 따라서 예수님의 현존을 깊이 체험하는 미사에 적극 참여하자. 영성체 모시면서 그분 부활을 우리 몸 안에 받아들이자. 오늘을 사는 우리도 엠마오로 가는지도 모른다. 그때의 그 나그네가 겪은 예수님 부활 사건을 이야기하면서, 엠마오로 향하는 그 제자일 수도. 그곳에서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 오늘 그 만남이 우리 것이 될 수 있게, 본당 미사에 적극 참여하자.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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