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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4.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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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4-04-04 조회수321 추천수8 반대(0) 신고

 

2024년 4월 4일

부활 팔일 축제 목요일

아름답고 멋진 장소에 가시면

무엇부터 하십니까?

아마 감탄사가 먼저 나올 것이고,

그리고 이를 오랫동안 기억에 남기기

위해서 사진도 찍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아름답고 멋진

장소라도 자기 몸 상태에 따라

하지 않는 행동이 될 수 있습니다.

10년 전, 남미를 다녀올

기회가 있었습니다.

비행기 탄 시간만 하루가 될

정도로 먼 곳에 있는 곳이고,

이제 다시 이곳에 오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에 많은 체험을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일정을 마치고

관광을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가고 싶었던 페루 쿠스코에

도착했을 때, 울고 싶었습니다.

안데스산맥 사이의 해발 3,399m에

위치한 15세기에 세워진 고도시입니다.

볼 것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하지만 사진 한 장 찍기도 힘들었습니다.

두통과 어지러움, 계속해서 붕 뜬 느낌과

소화 불량이 계속 제 몸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고산병 때문입니다.

고산 증세로 힘들어하고 있을 때,

과연 아름답고 멋진 경치가

눈에 들어왔을까요? 사람들이

감탄사를 외치는 곳에서 저는

한숨만 내쉬면서 빨리 낮은 곳에

가고만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 고산 증세는 계속되지 않았습니다.

하룻밤을 묵고 나서는 다시 생생해졌고,

그제야 아름답고 멋진 장소가

눈에 보였습니다. 이제는 이곳에

계속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나’의 이해에 따라 달라지는

주변 환경에 대해 묵상할 수 있습니다.

그 환경에 적응하고 바라보니 완전히

다른 세상이 보인 것처럼,

주님께도 완전히 적응해야 지금과

완전히 다른 세상을 볼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모여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죽음 이후

방문을 닫아걸고 있었습니다.

자기들 역시 죽지 않겠냐는

두려움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죽음은 이미 예수님께서

직접 3번이나 예고하셨던 것입니다.

제자들이 몰랐던 사건이 아닙니다.

3번이나 예고하셨던 수난과 죽음,

부활을 잊어버렸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나’의 이해가 바뀐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할 때는 희망이 가득했습니다.

예수님을 환호하는 많은 군중의 모습을 보면서

자기들 역시 세상 안에서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돌변한 군중의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라고 외치는 소리,

예수님의 뺨을 때리고 침을 뱉는 모욕적인

군중의 모습에 예수님께서

지금까지 하셨던 모든 말씀을

잊어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본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면서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

오늘의 명언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너무 가깝지도 않게, 너무 멀지도 않게

(고사성어)

사진설명: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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