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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어떻게 살 것인가?”_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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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4-04-04 조회수270 추천수5 반대(0) 신고

 

-주님의 참사람이 되어-

 

 

어떻게 살 것인가? 

주님의 참사람이 되어 사는 것입니다. 하루하루 섬기는 자세로, 배우는 자세로 깨어 겸손히 사는 것입니다. 눈만 열리면 주변 모두가 스승이요 배울 것은 무궁무진합니다. 가르침과 깨우침이 되는 여러 예화들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이런 가르침에 유의하여 사는 이들이 주님의 참사람들이겠습니다.

 

1.역시 오늘 소개되는 옛 어른이 말씀입니다.

“사람과의 신의(信義)를 지키는 일은 먼 이상이 아니라, 일상에서 실천해야할 덕목이다.”-다산

“이익을 보면 의로운가를 생각하고(견리사의;見利思義), 위기를 보면 목숨을 바치며, 희미해진 약속이라도 잊지 않는다면, 완성된 인간이라 할 수 있다.”-논어

 

2.계속되는 파스카의 축제와 더불어 만개하기 시작한 봄꽃들에 귀한 가르침을 줍니다. 순간 떠오른 가르침이 정직입니다. 일년 꼬박 기다렸다가 때되어 어김없이 피어나는 꽃들을 보며 자연은 참 정직하다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옥에서 수인중 가장 무시받는, 사람 취급 못받는 죄인들이 사기꾼이라 합니다.

 

정직, 효도, 우애를 조카들에게 가훈(家訓)으로 남기고 떠난 셋째 형님 생각도 납니다. 가훈 그대로 참 정직하게 살아가는 세 형제 조카들입니다. “정직이 최선의 방책이다”, “정직이 가장 오래간다”란 말마디도 생각납니다. 역시 ‘신의’와 더불어 마음에 새겨야 할 ‘정직’이란 덕목입니다.

 

3.낮은 자리 곳곳에 피어나는 제비꽃을 보니 23년전 써놨던 “절망은 없다”란자작 고백시가 떠오릅니다.

 

“자리 탓하지 말자

 그 어디든 뿌리 내리면 거기가 제자리다

 하늘만 볼 수 있으면 된다

 회색빛 죽음의 벽돌들

 그 좁은 틈바구니 집요히 뿌리내린

 연보랏빛 제비꽃들!

 눈물겹도록 고맙고 사랑스럽다

 죽음보다 강한 생명이구나

 절망은 없다!”-2001.4.18.

 

하느님 사전에 없는 낱말이 절망입니다. 넘어지는 것이 죄가 아니라 자포자기 절망으로 일어나지 않는 게 죄입니다. 넘어지면 곧장 일어나 새롭게 시작하는 탄력좋은 삶, 희망의 삶이 바로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파스카의 삶입니다.

 

4.현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전임 베네딕도 교황님과 세상 떠나기전 10년간 얼마나 깊은 우정을 나눈 삶인지, 또 얼마나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겸손하고 지혜로운 외유내강(外柔內剛)의 베네딕도 교황님을 존경하고 신뢰하고 사랑했는지 깨닫게 되는 최근 인터뷰 내용도 감동적입니다.

 

“그분은 나에게 아버지와 같았다. 그분은 언제나 나를 옹호했고 결코 간섭하지 않았다, 베네딕도 그분은 참으로 젊잖은 분이였다. 어떤 경우든 사람들은 제한된 그분의 움직임에서도 유익을 얻었다. 그분은 참 섬세한 분이셨다. 그러나 그분은 약하지 않았고 강인했다. 그분은 참으로 겸허했고, 어떤 부담을 주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분은 참 많이도 고통을 겪었다.”

 

두분 교황들에서 위대한 성인의 면모를 봅니다. 이런 주님의 제자다운 한결같은 상호존경과 신뢰, 겸손의 모습들이 우리 마음에 깊은 안정(安靜)과 평화를 줍니다.

 

5.한밤중 기상하여 휴게실에 가는 도중 게시판에 붙은 부고에 순간 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독일 오틸리엔 베네딕도 연합회의 전설이 된 노트켈 아빠스의 부고 내용입니다.

 

“친애하는 형제 여러분께, 2024년 4월3일 로마에서 성지순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선종하신 사랑하는 노트커 볼프 아빠스님의 갑작스러운 선종 소식을 매우 슬프게 접했습니다. 노트커 아빠스는 1940년 6월 21일 그뢰넨바흐에서 태어나 1962년 9월17일 서품을 받았습니다. 1977년부터 2000년까지 성 오틸리엔 총아빠스, 2000년부터 2016년까지 세계 베네딕도회 수석아빠스를 역임했습니다. 기도중에 노트커 아빠스를 기억해 주세요. 아빠스님께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영원한 기쁨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참으로 전무후무의 약력을 지닌 불가사의의 탁월한 지도자 아빠스였습니다. 저보다 9세 연상이니 우리나이로 85세입니다. 죽음도 멀지 않았음을 깨닫습니다. 성 베네딕도의 경구가 떠오릅니다.

 

“죽음을 날마다 눈앞에 환히 두라”(성규4,47)

(Mortem cotidie ante oculos suspectam habere)

 

누구에게나 언젠가 맞이할 공평한 죽음이요, 하루하루 처음이자 마지막처럼, 평생처럼, 참 귀한 선물같은 오늘 하루, 본질적 깊이의 감사와 기쁨의 삶을 살아야 함을 배웁니다. 무엇보다 주님 평화의 사람이 되어 사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참 좋은 선물이자 우리가 이웃에 줄 수 있는 참 좋은 선물이 주님의 평화입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부활하신 주님은 유령이 아니라 영과 육을 지닌 참된 분으로, 전혀 다른 차원으로 늘 우리와 함께 존재하는 분이십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평화와 더불어 제자들은 물론 우리 모두에게 사명을 부여하십니다.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

 

용서를 위한 회개의 사도로 중책을 위임받은 제자들의 활약상이 바로 오늘 사도행전에서 펼쳐집니다. 앞서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에 이은 솔로몬 주랑에서의 설교로 그 일부를 인용합니다.

 

“여러분은 생명의 영도자를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그분을 다시 일으키셨고, 우리는 그 증인입니다. 그분에게서 오는 믿음이 여러분 모두 앞에서 이 사람을 완전히 낫게 해 주셨습니다. 나는 여러분도 여러분의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무지한 탓으로 그렇게 하였음을 압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하느님께 돌아와 여러분의 죄가 지워지게 하십시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종을 일으키시어 여러분 하나하나를 악에서 돌아서도록 하여 여러분에게 복을 내리게 하셨습니다.”

 

베드로 사도의 설교중 핵심 부분을 나눴습니다. 무지의 악에 대한 유일한 처방은 회개뿐입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한 회개입니다. 온전히 자나깨나 하느님을 향해 활짝 열린 회개의 삶이요, 회개와 더불어 선사되는 성령의 은총이, 믿음과 평화가 주님의 참사람이 되어, 주님의 증인이 되어 살게 합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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