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부활 제2주간 화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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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 작성일2024-04-08 | 조회수420 | 추천수5 | 반대(0) |
브라질의 돔 헬더 까마라 대주교님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내가 가난한 이들에게 빵을 나누어 주자고 말하니까 사람들은 나에게 호의적이었습니다.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가난한 이들이 잘 살 수 있도록 사회의 구조를 바꾸자고 말하니까 사람들은 나를 공산주의자라고 하였습니다.” 복지 차원에서 가난한 이들을 도와주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지만, 사회의 구조를 바꾸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인류는 구조를 바꾸려는 시도를 하였고, 그 시도는 성공하지 못하였습니다. 두 가지 원인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소유와 이익을 얻으려는 인간의 욕망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부정과 부패 때문입니다. 지금의 인류는 ‘자본주의와 물질만능주의’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자본주의와 물질만능주의는 두 개의 날개를 달고 하늘 높이 날고 있습니다. 하나는 더 많은 소유를 원하는 인간의 욕망입니다. 다른 하나는 기술과 과학의 발전입니다. 자본주의와 물질만능주의는 달콤한 열매를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달콤한 열매에는 독이 들어 있습니다. 기후위기와 같은 생태계의 파괴입니다. 자본주의와 물질만능주의라는 열차에 탑승하지 못한 이들은 더욱 가난해 지고 있습니다. 철학, 문학, 예술, 인문학, 종교라는 인류의 유산이 소외되고 있습니다.
학생 때, 감명 깊게 읽은 책이 있습니다. ‘갈매기의 꿈’입니다. 다른 갈매기들은 자본주의와 물질만능주의라는 먹이를 얻기 위해서 하루하루 살아갑니다. 그런데 또 다른 가치를 찾아서 살아가는 갈매기가 있었습니다. 삶의 의미를 찾는 갈매기입니다.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갈매기입니다.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지를 성찰하는 갈매기입니다. 사랑하는 갈매기와 헤어지는 고통, 미워하는 갈매기와 만나야 하는 고통,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갈매기의 고통, 자신의 뜻과 다르게 행동하는 갈매기의 고통을 깊이 성찰하는 갈매기입니다. 그런 고통의 근본적인 원인은 ‘집착’에 있다는 것을 깨달은 갈매기입니다. 이 갈매기는 성공, 명예, 권력으로는 참된 행복을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참된 행복은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참된 행복은 가진 것을 나누고, 이웃의 아픔을 공감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참된 행복은 공감, 겸손, 회개, 식별을 통해서 주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참된 행복이 이루어지는 나라를 선포하였습니다. 그러나 다른 갈매기들은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갈매기를 공산주의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갈매기는 부처님일 수도 있고, 그 갈매기는 소크라테스일 수도 있고, 그 갈매기는 예수님일 수도 있습니다. 그 갈매기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모든 혁명가일 수도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한다. 그러나 너희는 우리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내가 세상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않는데,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찌 믿겠느냐?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이 ‘복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구름처럼 예수님의 곁에 머물렀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 때문에 목숨까지도 기꺼이 내어 놓았습니다. 그렇게 해야 이 땅에서 하느님 나라를 시작할 수 있고, 죽어서도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예수님의 이 말씀이 ‘신성모독’이라고 했습니다. 자신들의 기득권과 자신들의 명성을 빼앗길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아들을 하느님의 이름으로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성지순례를 온 것은 예수님의 그 말씀이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그 말씀을 따르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또 다른 세상을 꿈꾸는 갈매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키프로스 태생의 레위인으로, 사도들에게서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의 바르나바라는 별명을 얻은 요셉도, 자기가 소유한 밭을 팔아 그 돈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놓았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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