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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4월 10일 부활 제2주간 수요일<"행복하여라 그분께 몸을 숨기는 사람.">오 상선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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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4-04-10 조회수121 추천수1 반대(0) 신고

예수님과 니코데모의 담화가 계속됩니다. 요한 복음사가는 여기서 예수님의 입을 빌어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이랄 수 있는 명제를 남깁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 3,16)


성부 · 성자와 세상의 관계 및 구속사업의 목적이 짧지만 명확하게 담긴 이 말씀에 대해 니코데모가 어떻게 반응했는지 복음서에는 드러나지 않습니다. 담화의 말미로 갈수록 니코데모의 질문이나 반응보다는 신학적 내용을 설파하려는 복음사가의 목적이 더 강하게 드러나는 듯, 그의 존재는 희미해지고 말씀만 강하게 남습니다.

만일 세속의 권력자 이야기라면, "임금님이 외아드님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세상을 그에게 내주시어..."로 내용이 완전히 달라질 겁니다. 오랜 인간 역사를 보더라도 당연히 그래왔고요. 세상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은 세상 논리와는 완전히 역행합니다. 세상 구원을 위해서라면 생명의 원천이고 주인인 신의 죽음도 허용할 만큼 하느님 사랑은 극적이고 역설적이지요.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은 이미 심판을 받았다."(요한 3,18) 나약한 죄인인 인간이 심판을 비껴갈 수 있는 길은 "믿음"이라고 하십니다. 구원의 프리패스가 권력이나 부, 명성 · 업적이 아니라 믿음이라니, 세상에서 딱히 별볼일 없는 우리로서는 희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믿지 않으면, 즉 예수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신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고의로 인정하지 않고 거부한다면, "이미 심판을 받았다"고 과거형으로 확정해 말씀하십니다. 믿지 않아서 심판을 받은 건지, 심판을 받아서 믿지 않는 상태가 된 건지 선후를 가리기 모호할 만큼 단정적으로 말씀하시는데 이 대목에서는 모골이 송연해집니다.

어떤 사람이 누군가로부터 지속적으로 모욕과 천대를 받다가 너무 고통스런 나머지 한 현자와 면담을 하며 이를 토로했다고 합니다. 그때 그 현자는 "당신에게 계속 폭력을 가하는 그 사람의 지금 그 모습이 어쩌면 징벌 상태일지도 모릅니다. 인간으로서 마땅히 행해야 할 선(善)을 잃어버린 상태가 곧 지옥이고 심판이니까요. 그러니 하느님께 그를 고발하기보다 오히려 그의 구원을 위해 기도해 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어쩌면 심판은 어느 미래에 다가올 결과라기보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마음가짐과 영혼의 상태를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구원 상태를 누리며 사는지 이미 심판받은 자로서 하느님과 멀어져 있는지는 누구보다 스스로 잘 알 수 있을 겁니다.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간다. 자기가 한 일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는 것이다."(요한 3,21) 악을 저지르는 이는 어둠으로 숨어들고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갑니다. 제1독서에 나타난 제자들의 모습이 이를 증명하지요.

"사도들을 붙잡아다가 공영 감옥에 가두었다. 그런데 주님의 천사가 밤에 감옥 문을 열고 사도들을 데리고 나와 말하였다. '가거라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모두 백성에게 전하여라.' 이 말을 듣고 사도들은 이른 아침에 성전에 들어가 가르쳤다."(사도 5,18-21)

"밤"과 "이른 아침", "감옥"과 "성전"은 각각 어둠과 빛을 상징하는 시간과 공간입니다. 천사의 도움으로 "밤", "감옥"에서 풀려난 사도들은 자기 안위를 위해 멀리 도망가거나 숨어버리지 않습니다. 어둠을 피하려 또다른 어둠을 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이른 아침"에 "성전"에 나와 섭니다. 또다시 투옥과 박해, 위험이 닥칠지라도 아랑곳하지 않고 빛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는 곧, "자기들이 한 일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는 것"입니다.

무지하고 단순한 이들로 구성된 사도들의 담대하고 순수한 믿음에 지도층은 당황하기 시작합니다. 어떤 식으로든 그들의 견고한 불신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믿음 때문에 앞으로 사도들에게 닥칠 환난과 박해와 순교는 오로지 빛을 향하고 서 있는 사도들의 구원 상태를 보여주고, 반면 그동안 쌓아 온 신념과 아집에 고착된 채 자기 자리를 고수하며 믿음을 거부하고 말살하려는 이들은 빛에서 등을 돌린 심판 상태일 것입니다. 이는 세상의 시각이 아닌 영의 시각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역설이지요.

"행복하여라 그분께 몸을 숨기는 사람."(화답송) 재물과 권력과 명성의 그늘에 의지하지 않고 말씀의 빛과 진리에 몸을 숨기는 이는 복됩니다. 그는 이미 구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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