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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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 작성일2024-04-16 | 조회수167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처음에 묵상 글을 쓰는데 두분의 신부님들이 크게 화를 내시면서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너는 묵상글을 쓰면 않된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신부님들의 말씀은 100% 이해가 되었고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묵상 글과 관련해서 그분들만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고 다른 신부님들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나에게 묵상글 관련해서 하지 말라고 하신 분들은 성직자 분들이었고 그분들은 거의 대부분 반대를 했습니다. 그 이유도 알고 있습니다. 왜 반대하셨는지는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하면 않되고 내가 왜 하지 말아야하는지는 그분들이 영안이 열려 있기에 그분들이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묵상을 9년을 했는데 사실은 하면 않됩니다. 처음에 그것을 알면서도 했던 이유는 당시 대구에서 공부 하고 있을 때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싶어서 묵상을 한것입니다.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대구에 내려가서 대화할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기도도 하고 하느님과 대화를 하고 싶어서 한 것이 묵상이었고 무사히 학위를 받는 동안 외로움 없이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당시 내가 약속한 것이 있는데 내가 학위를 마치면 그만하겠다고 주님께 이야기 했고 학위를 마치고 나서 그만 두려는 순간 어느 자매님이 지속적으로 묵상을 하는 것을 공개적으로 요청이 있어 저가 여러분들에게 약속한 것을 스스로 어기고 말았습니다. 그것을 보고 계신 신부님들은 속으로 화가 치밀었을 것입니다. 저 형제 하면 않되는데 왜 계속하는 것일까? 그런 눈치 입니다. 그런데 저가 묵상 여부를 할지 말지를 나누려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눈을 말하려고 합니다. 이곳 묵상글란에 신부님들의 글을 신자분들이 올립니다. 그러나 각 신부님의 글을 읽어 보면 성령이 움직이심이 보입니다. 그런데 신부님들의 글에 찬성 혹은 댓글을 동일하게 올리지 않고 어떤 분은 댓글이 아주 많이 달려있고 찬성도 많이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분은 거의 올려져 있지 않은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찬성과 댓글을 올리시는 분들은 신자들입니다. 자기 보고 싶으대로 보고 자기 생각대로 찬성 혹은 댓글을 올립니다. 그럼 그것이 하느님의 마음을 대변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식별하는 눈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신부님들은 저의 글을 읽어 보고 그 content를 보고 반대 하신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을 보고 반대를 한것입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신부님들은 아직도 반대가 우세하실 것입니다. 영적인 눈이 있기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신부님들이 저에게 아주 심한 욕을 하거나 아주 대로를 하여도 저는 그분들의 말씀에 무엇이라고 대꾸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분도 사람이니 그럴수 있지 ..그 차원이 아니라 그분은 영적인 차원에서 그런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여기서 묵상을 하는 것은 영적인 눈을 뜨기 위하여서 여러분들이 묵상하는 것입니다.영적으로 하느님이 무엇을 원하시는 지 알기 위해서 묵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왜 같은 사람을 가지고 신부님들은 모두 반대를 하는데 신자분들은 왜 그것을 모를까? 이것도 한번 곰곰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내 일인데 왜 모를까요? 식별 식별하시는데 그런데 그 말씀이 무슨 말인가? 그것을 잘 모르고 이 묵상 글을 읽고 있습니다. 진정으로 무엇을 원해서 묵상을 하는 것인지 좀 물어 보고 싶습니다. 영적인 눈이 떠 있지 않으면 쉽게 유혹 받고 쉽게 쓰러집니다. 영적인 것으로 보지 못하고 육적인 눈으로만 보면 그 순간 뿐입니다. 신부님들의 글은 신부님의 것입니다. 내것이 아닙니다. 영적인 식별이 있는지 없는지는 잘 성찰해 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나름 다음 정거장으로 가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과 독서를 보면 주님이 자신을 하느님의 빵이라고 하고 그 빵을 알아 보는 사람과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이 구분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알아 보는 것도 하느님이 눈을 뜨게 해주셔야 눈을 뜨고 알아 보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사도 바오로 입니다. 지금은 하느님께서 눈을 뜨게 해주시지 않아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가두고 박해를 합니다. 내 안에 하느님의 영이 없기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여기 성당을 다닌다고 해도 하느님의 영이 없는 사람은 바오로와 같다고 보시면 좋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곳 묵상글을 여러 신부님의 글을 옮겨서 같이 나누지만 어느 신부님에 유독 매일 매 순간 댓글을 올리시는 분이 계십니다. 유독 그분만이 눈에 뛰어요.. 말도 많이 하시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그분은 유독 돋보입니다. 영적인 분이기에 그렇습니다. 스테파노가 사람들로 부터 돌에 맞아 죽습니다. 그런데 그는 영적인 눈으로 주님이 하느님 오름편에 서 계신 것을 보신 분입니다. 영안이 떠 있기에 그렇게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 묵상에 참여 하시는 분중에 사제가 아니고 유일하게 그분만은 영적인 눈이 떠있는 분 같습니다. 저도 그분을 뵌적이 있는데 참 .. 영적인 분은 영적인 분입니다. 30년 이상을 훈련 받으신 분입니다. 그러니 영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훈련을 받지 않고 그냥 내 하고 싶은 데로 글을 바라본다면 그것은 나의 만족을 위해서 읽는 것과 같습니다. 훈련이 필요합니다. 저도 30년 이상 어느 신부님으로 부터 훈련과 대화를 통해서 나름 눈을 떠 갈 수 있었습니다. 피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기도가 뒷 받침이 되어야 하고요. 금방되지 않습니다. 혹독한 훈련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어설프게 몇번 글 읽어 보았다고 해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도 그 길을 찾아 떠나 보심이 좋을 것 같습니다. 수없이 넘어지겠지만 그러나 그 과정에서 나름 눈이 열리는 기쁨도 같이 볼 수 있습니다. 한번 해보시기 바랍니다. 생명의 빵을 선택해서 영원한 생명을 얻으며 마지막날에는 주님을 통해서 다시 살아 납니다. 영원한 생명이란 ? 주님 없는 삶자체가 무의미함입니다. 주님과 같이 함이 의미 자체가 있는 것이고 참 삶입니다. 이것이 영원한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현존 안에 내가 같이 있는 것..이것이 영원한 삶이라는 것입니다. 내 중심에 주님의 현존이 있고 나를 인도하여 주시는 분이 주님이고 나는 그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삶은 혼자 가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과의 관계도 사랑이 기초하여야 같이 가는 것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내가 원수진 사람이라 할 지라도 그를 품고 같이 가는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 후 사람과 사람을 원한이 아닌 사랑으로 바라보시고 끝까지 같이 가신 분입니다. 나도 어제의 것을 잊고 같이 품고 가려고 합니다. 같이 품고 갔으면 좋겠습니다.내가 지난 부활절에 불미스런 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의 글에 신고와 부정을 다시는 분들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절대로 그것을 바라보지 않으렵니다. 더욱 깊이 들어갈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신부님들의 글도 더 올려 놓은 것입니다. 더 깊이 묵상하려고 합니다. 나는 평신도지만 더욱 깊이 주님의 현존을 나누겠습니다.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을 그분들은 보고 있으니 그부분도 나도 벤치 마킹하면서 열렬히 걸어갈 것입니다. 주님 함께 하실 것입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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