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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사제들만 살 수 있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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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백봉7 쪽지 캡슐 작성일2024-04-20 조회수313 추천수3 반대(0) 신고

 

 

 

 

 

 

2024년 나해 부활 제4주일 (성소주일)

 

 

 

<사제들만 살 수 있는 나라>

 

 

 

복음: 요한 10,11-18

 






하느님의 아들이며 말씀이신 그리스도

(1540-1550), 모스크바 크레믈린 Cathedral of the Sleeper

 

 

 

 

 

    어느 나라, 어느 공동체든 그 공동체에 들어갈 자격이 있습니다. 바로 ‘사랑의 능력’입니다. 모기 같은 사람이 이 사회에 살 수는 없습니다. 강도 질 하거나 사기를 치다가 감옥에 갇힙니다. 

    우리는 솔로몬의 재판을 잘 알고 있습니다. 두 여인 중 한 어머니의 아이가 죽었습니다. 질투 끝에 다른 엄마의 아기를 훔쳐 왔습니다. 둘은 그 아이가 서로 자기 아이라고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솔로몬은 그 아이를 반으로 잘라서 나누어 가지라고 합니다. 못된 여인은 그러자고 하고 진짜 엄마는 차라리 그 아이를 여인에게 주라고 합니다. 이것으로 그 나라에 살 백성이 정해집니다. 

 

 

    아직 아이는 그 나라에서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런 아이를 그 나라에 살 자격을 얻기까지 키워낼 수 있는 여인은 그 아이의 생명을 위해 자기의 소중한 아들까지도 내어줄 수 있는 엄마밖에 없습니다. 이 역할을 우리는 ‘사제직’이라고 합니다. 하느님 나라를 사제들의 나라라고 부릅니다. 서품을 받아야만 사제가 아니라 세례를 받으면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왕직, 예언자직, 그리고 사제직에 참여합니다. 

 

 

    오늘은 착한 목자 주일, 혹은 성소 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제로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목숨을 바치셨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희생에 감사하여 그분의 뒤를 따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어떻게 부활의 영광을 아버지께 받지 않으시겠느냐는 것입니다. 자녀를 잘 키워 놓은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받는 영광처럼, 분명 그리스도는 부활하실 수밖에 없는 시스템 안에서 사셨습니다. 

 

 

    사제는 더 높은 세상과 더 낮은 세상을 연결해주는 중개자와 같습니다. 그런데 더 높은 존재와 머무는 것도 피 흘림이고, 더 낮은 이와 머무는 것도 피 흘림입니다. 하느님과 머물기 위해서는 죄를 죽여야 하고, 죄인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도 참아내야 합니다. 

 

 

    유튜브 ‘우와한 비디오’에 산속에서 40년을 산 할머니가 나옵니다. 그 할머니에게 제작진이 아무리 설득해도 할머니는 내려가지 않으려 합니다. 하지만 제작진이 추운 겨울임에도 텐트를 치고 일주일 이상을 할머니와 머물며 말 벗이 되어주고 이것저것 많은 도움을 줍니다. 할머니의 마음이 열립니다. 그래서 제작진에게 자신이 가진 귀한 쌀과 김치로 밥을 지어줍니다. 제작진은 맛있다며 먹습니다. 할머니는 “내가 미안해서 어떻게 할 줄을 몰라서 그래!”라고 말합니다. 

 

 

    사제의 피는 양들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줍니다. 그래서 아래로 내려가자는 제작진의 말을 듣습니다. 할머니는 40년 만에 따듯한 밥과 잠자리에서 허리를 펴고 주무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방송국에서 이러한 고생을 한 제작진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을 수 있을까요? 우리도 무언가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도와줄 것입니다. 이런 일이 하늘에서도 일어납니다. 

 

 

    성 다미아노 신부는 아무도 가지 않는 나병 환자들 촌으로 들어가 그들에게 선교합니다. 그들의 무덤을 파 주고 고름을 닦아줍니다. 그 과정에서 본인도 나병에 걸립니다. 이때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릅니다. 그가 평소에도 “주님, 저에게도 같은 나병을 허락하시어 저들의 고통에 동참하게 해 주소서.”라고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 자신은 건강을 잃어버렸지만, 하느님께서는 나병 환자들 틈에서 일하는 내 선교의 열매를 더욱 풍성하게 하시기 위하여 이 희생을 내려주셨으니, 나의 이 희생은 극히 작은 것이지만 나 자신을 위해서는 극히 유익한 것이었다.”

 

 

    나병에 걸려 돌아가시는데 뭐가 유익했다는 말일까요? 돌아가시면서도 “하느님 진실로 내 인생은 행복이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자신이 영원한 행복에 들리라는 확신은 어떻게 얻을 수 있었을까요? 이 세상도 그러한 시스템이기 때문에 이 세상을 만드신 분의 시스템도 같을 것이란 확신 때문입니다. 이분의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지자 수많은 봉사자와 재정적 지원이 이어졌습니다. 성인은 이 모습을 보며 하늘나라에서 당연히 받을 보상을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분과 함께, 이분을 이어 봉사하셨던 성녀 마리안느 코프 수녀는 나병에 걸릴 것을 걱정하는 동료 수녀들에게 자기 수녀원에서는 단 한 명도 나병에 걸리지 않을 것이라 확언하였고 역사가 그것을 증명하였습니다. 

    이렇게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서뿐만 아니라 저승에서도 사제직의 역할을 하는 이들에게 은총이 한없이 주어짐을 표징으로 보여주십니다.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받는 영광은 자녀를 잘 키워내는 희생에 기인합니다. 이것이 사제만이 하늘나라 영광을 차지할 이유가 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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