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부활 제4주일 강론 송영진 모세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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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 작성일2024-04-20 | 조회수204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나는 착한 목자다.>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 삯꾼은 목자가 아니고 양도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들을 버리고 달아난다.
그러면 이리는 양들을 물어 가고 양 떼를 흩어 버린다. 그는
삯꾼이어서 양들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착한 목자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이는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 나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다. 그러나 나에게는 이 우리 안에 들지
않은 양들도 있다. 나는 그들도 데려와야 한다. 그들도 내
목소리를 알아듣고 마침내 한 목자 아래 한 양 떼가 될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내가 목숨을 내놓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신다. 그렇게 하여 나는 목숨을 다시 얻는다. 아무도
나에게서 목숨을 빼앗지 못한다. 내가 스스로 그것을 내놓는
것이다. 나는 목숨을 내놓을 권한도 있고 그것을 다시 얻을
권한도 있다. 이것이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받은
명령이다(요한 10,11-18).”
1) 예수님이 ‘착한 목자이신 분’이라고 믿으려면, 그 전에 먼저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세주” 라고 믿어야 합니다.
당신이 ‘어떤 구세주인지’ 설명하기 위해서
‘착한 목자’ 라는 말을 사용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려고 오신 구세주” 라는 것을
안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착한 목자’이든지 아니든지
관심도 없고, 그런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려고 오신 분이기 때문에
‘착한 목자이신 분’이고, ‘착한 목자이신 분’이기 때문에
당신의 목숨을 내놓으셨습니다.
<하느님은 선(善) 자체이신 분이고, 하느님의 본성은 선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한처음’부터 ‘착한’ 목자이신 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말씀을 해석할 때, 당신의 목숨을 내놓으셨기
때문에 착한 목자이신 분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지만,
착한 목자이신 분이기 때문에 당신의 목숨을 내놓으셨다는
해석이 더 자연스러운 해석입니다.>
2) 예수님이 구세주라는 것을 믿는다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일은 곧 ‘하느님의 사랑’이라고 믿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인류 구원’은 곧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니까,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원래 사랑이란, 대가를 바라지 않고 주는 것입니다.
<무슨 이득을 취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에는 사랑 말고는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사랑’과 ‘목숨을 내놓는다.’ 라는 말에서,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3).”
라는 예수님 말씀이 연상되는데, 예수님은 언제나 어디서나
항상,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3) “사랑하니까 ‘목숨을’ 내놓는다.” 라는 말과 “사랑하니까
‘목숨도’ 내놓을 수 있다.” 라는 말은 완전히 다른 말입니다.
“사랑하니까 목숨도 내놓을 수 있다.” 라는 말은,
종교나 신앙과 상관없이 세상 사람들도 흔히 하는 말입니다.
<그렇게 말로 장담하는 것은 쉬운 일인데, 실제로 그것을
행동으로 실행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예수님 수난 때에 베드로 사도가 바로 그 말을 했습니다.
“주님을 위해서라면 저는 목숨까지 내놓겠습니다(요한 13,37).”
그렇게 장담했다가 시간이 얼마 지나지도 않아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다.” 라는
예수님 말씀은 그런 장담이 아닙니다.
당신의 목숨을 내놓으려고 세상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사실, 세상에 오신 일 자체가 목숨을 내놓으신 일입니다.>
4) 예수님의 사랑을 믿는다면, 우리도 형제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당신 목숨을 내놓으신 그 사실로
우리는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아야 합니다. 누구든지 세상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기 형제가 궁핍한 것을 보고 그에게 마음을 닫아
버리면, 하느님 사랑이 어떻게 그 사람 안에 머무를 수
있겠습니까? 자녀 여러분, 말과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합시다. ...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1요한 3,16-18.4,11-12).”
<요한 사도가 “우리도 하느님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 라고 말하지 않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 라고 말한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당신의 사랑에 사랑으로 응답하기를
바라시는데, 응답하는 방법은 바로 ‘이웃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한 15,12).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 것처럼 너희도 나를 사랑하여라.”
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앙인은 주님을 사랑하기 위해서 이웃을 사랑합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곧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5) “예수님은 착한 목자이신 분”이라는 것을 믿는다면,
“나는 착한 양인가?” 라고 스스로 물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당신의 목숨을 내놓으신 ‘착한
목자이신 분’이라는 것을 믿는 것도 중요하긴 한데,
나 자신이 ‘착한 양’이 되어서, 내 안에서 예수님의
그 큰 사랑이 열매를 맺는 것이 나에게는 더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착한 목자이신 분이라고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혹시 자꾸만 한눈을 팔고, 옆길로 빗나가고,
세속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아닌가?
나는 정말로 예수님의 ‘착한 양’이 되어서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을 잘 따라가고 있는가?>
송영진 모세 신부
------------------------------------- [출처] 부활 제4주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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