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나는 양들의 문이다. (요한10,1-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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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업로마노 | 작성일2024-04-22 | 조회수190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부활 제4주간 월요일]
나는 양들의 문이다.
복음(요한10,1-10) 1 “내가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양 우리에 들어갈 때에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른 데로 넘어 들어가는 자는 도둑이며 강도다. 2 그러나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들의 목자다. 3 문지기는 목자에게 문을 열어 주고, 양들은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그리고 목자는 자기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4 이렇게 자기 양들을 모두 밖으로 이끌어 낸 다음, 그는 앞장서 가고 양들은 그를 따른다. 양들이 그의 목소리를 알기 때문이다. 5 그러나 낯선 사람은 따르지 않고 오히려 피해 달아난다. 낯선 사람들의 목소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 양(羊)은 시력이 나빠서 앞에 따라가던 양과 조금만 떨어져도 길을 잃어버린다. 그런데다가 공격성이란 전혀 없어서 파리가 자기 콧구멍에다 알을 낳으면 그걸 이겨낼 힘이 없어서 목자(牧者)가 잘 닦아주고 관리해 주지 않으면 코에 구더기가 득실대서 자기 머리를 나무에 박는 등 자해(自害)를 할 뿐이다. 그렇다고 구더기들이 떨어지지 않는데도 말이다. 그렇게 미련하고 우매한 것이 양(羊)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양은 목자가 없으면 풀밭에 편안하게 눕지도 못한다. 목자가 있을 때만 눕는다. 그런데 그런 양들에게 신비한 능력이 하나 있는데 잘 듣는 청력(聽力)이라는 것이다. 잠깐. 이스라엘은 양 우리를 크게 지어 놓고 한 사람에게 삯을 주고 온 동네 양들을 다 함께 넣고 지켰는데, 그때 양의 주인이 자기 양들을 불러낼 때 양들은 자기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고 따라 나온단다. 절대 다른 목자를 따라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동물학자들이 시험(試驗)해 봤다. 다른 목자에게 주인의 옷을 입히고 완벽한 성대묘사로 양들을 불렀는데도 한 마리도 따라 나오지 않더란다. *그것은 목자의 음성을 정확히 분별할 수 있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상징하기 위해 하느님께서 양들을 그렇게 만드셨다는 것이다. 양들로 우리를 교훈(敎訓)하기 위해 창조하셨음이다. 이 온 우주는 하느님의 백성들을 중심에 놓고 창조되었다. 그래서 우리를 양(羊)에 비유하신 것이다.
(이사53,6) 6 우리는 모두 양 떼처럼 길을 잃고 저마다 제 길을 따라갔지만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이 그에게 떨어지게 하셨다.
(시편23,1-3) 1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 없어라. 2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어 3 내 영혼에 생기를 돋우어 주시고 바른길로 나를 끌어 주시니 당신의 이름 때문이어라. = 어둠 속에서 길을 잃고 갈바를 몰라 헤메는 우리 죄인들이 하느님에 의해 불림을 받아 ‘목자의 목소리(말씀)를 알아듣고, 분별하여 구원 받는 이들을 당신의 양’이라 하시는 것이다. 그러니까 말씀으로 받는 구원(救援)이다.
(사도11,14) 14 그가 너에게 *말씀을 일러 줄 터인데, 그 *말씀으로 너와 너의 온 집안이 구원을 받을 것이다.’
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께서 자기들에게 이야기하시는 것이 무슨 뜻인지 깨닫지 못하였다. 7 예수님께서 다시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양들의 문이다. 8 나보다 먼저 온 자들은 모두 도둑이며 강도다. 그래서 양들은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9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받고, 또 드나들며 풀밭을 찾아 얻을 것이다. 10 도둑은 다만 훔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올 뿐이다. 그러나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 = 예수님보다 먼저 온 자들, 곧 구약의 제사와 윤리, 그 옛 계약이 참이라 고집하는 이들이다. 십자가의 대속, 그 구원의 의로움이신 그리스도의 피의 새 계약으로 거저 의롭게 됨을 믿지 않는 이들이다.(로마3,20-24 참조) 그래서 그 하느님의 구원의 뜻에 인간의 열심, 의(義)가 보태어져야 한다고 하는 이들이다. 그것이 하느님의 구원의 말씀, 진리인 새 계약을 도둑질하는 강도인 것이고, 사람을 영원한 멸망에 이르게 한다. 그리고 양 우리는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거저 얻는 의(義), 구원, 그 하느님의 은총, 은혜, 자비를 믿지 않고, 인간 스스로의 의로움을 진리로 내 뜻, 명예를 위해 살겠다고 고집하는 유대주의와 인본주의(人本主義)인 이 세상을 뜻한다. 그리고 ‘문지기는 우리의 보호자요 예수님을 구원의 진리로 증언하시는 성령’이시다. 그래서 3절에 문지기이신 성령께서 목자이신 예수님께 양들인 우리를 데리고 나가도록 하신 것이다. 그러니까 이 세상 속에 잠들어(죽어)있는 하느님의 백성, 자녀들을 예수님께서 하나하나 밖으로 불러내셔서 하느님의 말씀(새 계약)을 먹이시어 하늘의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다. *‘양 우리의 문’은 ‘하나’다. 예수님 당신이 문(門)이라 하심은 그 하나의 문(門)인 당신을 통해서만 구원에 이를 수 있음을 강조하신 것이다. 또한 하느님의 외아들, 그 한 분만으로 유대주의와 인본주의가 판치는 교회(敎會), 세상(世上)을 드나들면서도 주님의 양들은 그분의 목소리(새 계약, 말씀)를 알아들음으로, 이 세상에서부터 미리 하늘의 생명(生命), 안식(安息)의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오늘 제사와 윤리가 참이라 하는 그 거짓 가르침을 피할 줄 알게 하소서. 그래서 그리스도의 대속, 그 피의 새 계약을 따르는 합당하고 어울리는 삶을 살게 하소서. 저희 모두를 의탁합니다. 내버려두지 마소서.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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