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부활 제4주간 화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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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 작성일2024-04-22 | 조회수482 | 추천수8 | 반대(0) |
지난 부활 대축일 미사 때입니다. 3시 미사를 마치고 한숨을 돌리려고 했습니다. 한 자매님이 아이 셋을 데리고 왔습니다. 아이들이 첫영성체는 했는데 아직 첫 고백을 못 했다고 합니다. 제게 고백성사를 줄 수 있는지 부탁했습니다. 저는 당연히 고백성사를 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아이들에게 고백성사를 주고 나오는데 이번에는 젊은 부부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당연히 고백성사를 보는 줄 알고 들어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젊은 부부는 다른 사연이 있었습니다. 자기들은 개신교회에 다닌다고 합니다. 시어머니는 한국에서 성당에 다닌다고 하였습니다. 사연은 ‘아이’였습니다. 시어머니는 성당에 찾아가서 신부님에게 안수받으라고 했습니다. 젊은 부부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거절할 수 없었고, 아이를 갖고 싶은 마음도 있어서 성당을 찾았다고 합니다. 저는 젊은 부부를 위해서 안수를 해 주었습니다. 시간이 되면 언제든지 와서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젊은 부부도 성당이 밝고, 깨끗해서 좋다고 하였습니다. 아이의 어머니와 젊은 부부를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신앙은 ‘갈망’에서 시작되고, ‘감사’에서 성장하고, ‘기도’로 꽃을 피우고, ‘나눔’으로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닐까? 그렇습니다. 그 시작은 ‘갈망’입니다. 속담에 ‘평안감사도 싫으면 그만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느님께 부름을 받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유대인들이 고통 중에 있을 때 돌보아 주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유대인들이 올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계명을 주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잘못된 길을 갈 때는 ‘예언자’를 보내 주었습니다. 예언자들은 유대인들이 하느님께 돌아올 수 있도록 공정과 정의를 이야기하였습니다. 고통 중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희망을 이야기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런 유대인들을 위해서 ‘외아들’을 보내 주었습니다. 이제 외아들의 말을 듣고, 외아들을 믿으면 유대인들은 새 하늘과 새 땅을 볼 수 있을 거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거지가 동냥 통을 버린다는 말처럼 계명을 어겼고, 예언자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 보내신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정말입니다. 평안감사도 싫으면 그만이라는 말처럼 유대인들은 굴러들어 온 복을 버렸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사람들은 예수님께 이렇게 묻습니다. “당신은 언제까지 우리 속을 태울 작정이오? 당신이 메시아라면 분명히 말해 주시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이미 말하였는데도 너희는 믿지 않는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하는 일들이 나를 증언한다. 그러나 너희는 믿지 않는다. 너희가 내 양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 그리하여 그들은 영원토록 멸망하지 않을 것이고, 또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메시아이심을 아버지의 이름으로 말하였다고 하십니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표징을 보여 주었다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길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한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표징과 말씀을 보고 믿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을 하나도 잃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178년 전입니다. 관리들은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께 “당신이 천주교인이요?”라고 물었습니다. 천주교인이라고 인정하면 가진 것을 모두 빼앗길 수 있었습니다. 박해를 받아서 감옥에 갇힐 수 있었습니다. 가족들까지 모진 고생을 할 수 있었습니다. 순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은 당당하게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렇소. 나는 천주교인이요.” 조선의 첫 번째 사제였던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은 천주교인이라고 말하였고, 사제생활 1년 만에 순교하였습니다. 당시 신부님의 나이는 25살이었습니다. 천주교인이라고 이야기하였던 신부님은 이 세상에서는 비록 짧은 삶을 사셨지만, 천국에서 빛나는 별이 되셨습니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은 말과 행동으로 천주교인임을 보여 주었습니다. 우리 신앙의 선조들은 모진 박해와 시련 속에서도 “나는 천주교인이요.”라고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과연 우리는 “나는 천주교인이요.”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천주교인으로서 말과 행동에 부끄러움이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들은 만 일 년 동안 그곳 교회 신자들을 만나며 수많은 사람을 가르쳤다. 이 안티오키아에서 제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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