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이영근 신부님_2024년 5월 2일 목요일 _최원석 묵상 글
이전글 엘리사의 매일말씀여행(요한 15,9-11/성 아타나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다음글 예수고난회 박태원 신부님의 [5월 2일] 살아있는 매일의 지혜(영성체의 달콤함) |1|  
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4-05-02 조회수247 추천수3 반대(1) 신고

PS: 오늘 부터 잠시 동안은 이영근 신부님의 묵상글에 최원석 묵상 글도 같이 올리겠습니다. 제가 어떤 글을 올려도 매 순간 인간적으로 저를 싫어 하시고 반대를 하시는 분이 있어 그분과 이성적으로 부딛히기 싫습니다. 잠시 신부님께 죄스럽지만 같이 가려 합니다. 신부님 죄송합니다. 


제1독서

▥ 사도행전의 말씀 15,7-21 

 

그 무렵 

7 오랜 논란 끝에 베드로가 일어나 사도들과 원로들에게 말하였다.
“형제 여러분,
다른 민족들도 내 입을 통하여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하느님께서 일찍이 여러분 가운데에서 나를 뽑으신 사실을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8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하신 것처럼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시어 그들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9 그리고 그들의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정화하시어, 우리와 그들 사이에 아무런 차별도 두지 않으셨습니다.
10 그런데 지금 여러분은 왜 우리 조상들도 우리도 다 감당할 수 없던 멍에를 형제들의 목에 씌워 하느님을 시험하는 것입니까?
11 우리는 그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주 예수님의 은총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믿습니다.”
12 그러자 온 회중이 잠잠해졌다.
그리고 바르나바와 바오로가 하느님께서 자기들을 통하여 다른 민족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표징과 이적들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13 그들이 말을 마치자 야고보가 이렇게 말하였다.
“형제 여러분, 

내 말을 들어 보십시오.
14 하느님께서 처음에 다른 민족들 가운데에서 당신의 이름을 위한 백성을 모으시려고 어떻게 배려하셨는지, 시몬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15 이는 예언자들의 말과도 일치하는데,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16 ‘그 뒤에 나는 돌아와 무너진 다윗의 초막을 다시 지으리라.
그곳의 허물어진 것들을 다시 지어 그 초막을 바로 세우리라.
17 그리하여 나머지 다른 사람들도, 내 이름으로 불리는 다른 모든 민족들도 주님을 찾게 되리라.
주님이 이렇게 말하고 이 일들을 실행하니

18 예로부터 알려진 일들이다.’
19 그러므로 내 판단으로는, 다른 민족들 가운데에서 하느님께 돌아선 이들에게 어려움을 주지 말고,
20 다만 그들에게 편지를 보내어, 우상에게 바쳐 더러워진 음식과 불륜과 목 졸라 죽인 짐승의 고기와 피를 멀리하라고 해야 합니다.
21 사실 예로부터 각 고을에는,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모세의 율법을 봉독하며 선포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복음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 15,9-11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10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
11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가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요한 15,9)

이는 우리가 이미 사랑을 받았다는 선포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기원이 아버지께 있다는 선포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분명 ‘이미 사랑을 받은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아버지께로부터 왔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베풀어진 아버지의 사랑으로부터 그 누구도 그 무엇도 결코 떼어놓을 수는 없습니다."

 

사실 우리는 그 사랑을 받을만한 아무런 자격이 없지만, 우리 주님께서는 당신 호의와 자애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곧 선사된 사랑이 베풀어진 것입니다. 

자신이 선사받은 존재임을 깨닫는 일, 모든 것이 베풀어진 사랑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 이처럼 아름다운 일은 없을 것입니다. 

바로 이 사실이 오늘 우리를 경탄과 탄성, 경배와 예배, 음미와 감사, 찬미와 찬양의 삶을 불러들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성자께서 모든 것을 아버지께로부터 받았다’는 사실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으로 찬미 찬양의 삶을 사셨듯이 말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그 사랑 안에 머무르기를 초대하십니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요한 15,9)

여기에는 ‘먼저’ 당신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일이 전제됩니다. 

곧 선사되는 당신의 사랑을 ‘먼저’ 받아들여 그 안에 머물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당신의 사랑이 우리 자신 안에서 이루어지도록 ‘먼저’ 자신을 허용하고 승복하는 일입니다. 

그래야 다른 사랑이 아니라, 선사받은 바로 그 사랑 안에 머물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사랑 안에 머무는 방법도 함께 가르쳐주십니다.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

(요한 15,10)

이미 당신께 선사받은 그 사랑을 지키는 것이 곧 당신 사랑 안에 머무는 길이라는 말씀입니다. 

곧 그 어떤 사랑이 아니라, 선사받은 그 사랑을 간직하고 준수하는 것입니다. 

 

이는 당신의 사랑은 말이나 생각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사랑하기를 실행할 때 그 실행 안에 머문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그리고 당신의 이 사랑을 실행하는 것이 ‘새 계명’으로 선포됩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요한 15,12)

그리고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15,11) 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당신의 사랑 안에 머무르게 되면 당신의 기쁨이 우리 안에 들고 우리 또한 기쁨으로 차오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그 기쁨은 뒤에서 요한이 말한 대로, “그 누구에게도 빼앗겨지지 않는 기쁨”(요한 16,22)입니다.

그러기에 그 기쁨은 예수님께로부터 선사받은 신적인 기쁨이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기쁨은 결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선사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의 만족, 나의 성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사랑의 실현으로부터 오는 까닭입니다. 

 

오늘 하루 그 기쁨이 가득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요한 15,11)

주님!

제 안에는 당신의 숨결이 흐릅니다.

제 안에 새겨진 당신의 사랑입니다.

제 안에 굴을 파고들어 와 빈 무덤으로 모습을 숨긴 그지없이 충만한 사랑입니다.

결코 빼앗길 수도, 빼앗겨지지도 않는 기쁨입니다.

주님!

당신의 기쁨의 숨결이 온 세상에 퍼지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

 

최원석 묵상 글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예전에 법무팀에 근무하면서 힘들었던 것이 있었다면 시시비비입니다. 법을 다룬다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잘못이 무엇이고 이것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찾고 그것의 책임을 물어 다시는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에게 죄냐 아니냐 따지는 것이 싫었습니다. 그리고 법무팀이라는 곳이 사람 사이의 관계를 다루다 보니 참으로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 곳입니다. 따지기도 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것이 싫어서 학교를 두곳을 나왔어요. 어딘가 하나 정진하는 곳을 찾고 싶었습니다. 아침에 출근하면 잔머리로 시작해서 잔머리로 퇴근 하는 곳이 법무팀이었습니다. 그러니 저같이 하나만 생각하고 정진하는 사람에게는 동네 북과 같은 곳이 법무팀이었지요. 사람의 시시비비를 따지고 이를 올바로 판단하여서 각각의 사안들을 제자리로 돌려 놓는 것이 법무인데 저에게는 좀 힘이 부쳤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탁구공과 같이 이리 저리 치여 살았습니다. 법무팀에 있으면서도 저는 항상 성경 책과 묵상은 매 순간 하였습니다. 그러나 나의 묵상 생활과 법무의 일을 같이 수행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정화를 통해 성화로 가는 것이 묵상의 생활이라면 법무의 일은 세상을 법치의 일인지라 너무 저에게는 맞지 않았지요. 사람 사이에서도 많은 공격이 들어왔고 그것을 법무 관점에서 대응하는 것이 하느님 보시기 좋은 것인가? 그 부분에서 많이 괴로웠습니다. 이성적으로 판단해서 논쟁을 한다면 나도 빠지지 않는 사람이지만 그러나 주님을 내 가슴에 두고 법무의 일을 한다는 것이 너무 힘이 들었습니다. 논쟁을 벌일 줄 몰라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않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안에 대해서 법무팀 안에서도 논쟁을 벌이는 일이 있습니다. 법리 논쟁에 대해서 서로 의견을 주고 받을때가 있습니다. 그 순간이 되면 논리적으로 잘 정리해서 발표를 하고 그들을 압도하는 모습을 여러번 제가 보여 주었습니다. 그래서 나름 법무팀장도 저의 양면을 보고 놀래기도 하였지요. 삼성 법무팀장은 나름 우리 나라 사법계에서는 Top 계층에 있는 분들입니다. 그러나 법리 논쟁과 사람 사이는 다른 것이어서 좀 많이 힘들었지요. 제 머리는 논리적인것은 되도 사람 가슴 아프게 하는 것은 좀 ..성경 책 매일 안고 사는 사람으로서 좀 어려운 자리였습니다. 그래서 박사 학위를 받은 것입니다. 법무가 저에게 어려운 것은 시시비비입니다. 사람 사이에 시시비비..묵상 생활하면서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사람 사이에 시시비비입니다. 하느님의 것을 찾는 것은 사랑입니다.  오늘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내 사랑 안에 머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머무름은 사랑입니다. 인내하여 주고 참아 주고 그 사람의 어두운 것을 밝은 것으로 비추어서 그가 인간적인 어두움에서 밝은 빛으로 회개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주님의 사랑입니다. 


왜 성직자들이 그토록 항상 영적으로 위에 있을 수 있을까? 그것은 사랑입니다. 인간의 어두움보다는 밝음을 알고 밝음 속으로 나아가기에 그렇게 영적으로 항상 충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 어둠이 있는데 그것을 탓하거나 잘못되었다고 논쟁하는 것이 아니라 어두움 속에 있는 이들에게 밝음 즉 사랑으로 그들을 인도하기에 어두움이 밝음으로 변하고 나도 성화되고 그와 같이 있는 이도 성화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은 하느님에게 진정으로 내어 맞길 수 있어야 사랑 할 수 있습니다. 내 힘으로 사랑 할 수 없습니다. 사랑은 하느님의 힘이기에 그분이 내 안에 임하셔야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나도 주님의 사랑 안에서 머물면서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도록 기도하겠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내안에 내것이 없어야 그분의 성령이 내 안에 임하셔서 좋은 것을 좋게 만드실 수 있습니다. 논리적으로 따지는 법무 일을 버리고 자금의 저로 살아간다는 것이 지금은 버겁지만 그러나 저에게는 맞는 것 같습니다. 주님은 파란 풀 밭으로 저를 인도하여 주시니 항상 감사할 따름입니다. 항상 내어 맞기는 내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성령이 내 안에 임하실 수 있도록 비우고 정화되고 성화 될 수 있도록 기도하겠습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