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조욱현 신부님_그 기쁨은 아무도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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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 작성일2024-05-10 | 조회수210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예수님이 제자들을 떠나가는 것은 제자들에게 슬픔이 되겠지만 그 슬픔이 기쁨으로 바뀌게 되리라는 것을 산모의 비유를 들어 말씀하신다. 여자가 해산할 때 진통이 없이는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킬 수 없다는 말씀이다. 제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스승을 잃는다는 고통은 두려움을 느끼게도 하지만, 부활하신 주님을 다시 만나게 될 때는 고통이나 두려움은 모두 잊게 되고 다시 만난 기쁨만 남게 될 것이며, 그 기쁨은 아무도 빼앗아 갈 수 없다. 그 고통은 기쁨을 낳는 고통이다. 이것이 부활 의미이다. 주님께서 그들을 떠나시는 것은 태 안에 있다가 밝은 대낮으로 건너가는 것과 같다. 우리도 이러한 고통을 통하여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날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될 것이다.
아기가 태어날 때, 어머니가 기뻐하듯, 우리도 장차 우리가 차지할 세상으로 태어날 때 교회도 기뻐한다. 교회는 우리가 그렇게 태어나도록 현세에서 수고하고 신음하며, 출산하는 여인처럼 근심한다. 교회는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을 천상 탄생으로 이야기한다. 아기가 어머니 태에서 나와 빛 속으로 오는 것을 태어난다고 하는 것처럼, 사람이 육체의 굴레에서 벗어나 영원한 빛 속으로 들어 올려지는 것을 태어난다고 표현하는 것은 적절하다. 우리는 성인들의 축일을 그분들이 돌아가신 날을 천상탄일로 표현하며 지내고 있다.
그리하여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22절) 희생과 고통이 수반되지 않은 기쁨은 내 마음 안에 오래 남지 못하고 없어진다. 그러나 내가 희생과 고통을 바친 결과로 기쁨을 갖는다면, 그 기쁨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은총이기 때문에, 아무도 빼앗을 수 없다. 주님에게서 오는 이 기쁨은 그렇기에 자기가 바친 고통을 잊게 하고, 자기가 바친 고통보다도 더 큰 보상을 받은 것 같아 주님께 감사드릴 수 있게 된다. 이때, 우리는 하느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갈 것이며 하느님의 지혜로 가득 찰 것이다. 이것으로 하느님과 더 깊은 일치를 이루는 기쁨을 갖게 된다. 이것이 모두 부활하신 주님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고통을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느님 앞에 나아가는 데는 고통이 없으면 나아갈 수가 없다. 이 고통과 희생은 하느님의 뜻을 이루고, 실천하기 위한 것이다. 그 고통은 내가 극복해야 할 나 자신과 싸움이다. 나 자신과 싸움이 가장 큰 희생이며, 고통이다. 이 고통을 바칠 수 있을 때, 새로운 생명인 기쁨이 우리에게 태어날 것이고, 우리의 고통을 모두 잊게 할 것이며, 새 생명은 나를 하느님 앞에 더 가까이 이끌어 줄 것이다. 이러한 삶을 충실히 살아가야 할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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