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부활 제6주간 토요일] 오늘의 묵상 (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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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업로마노 | 작성일2024-05-10 | 조회수221 | 추천수5 | 반대(0) 신고 |
2024년 05월 11일 토요일 [부활 제6주간 토요일] 오늘의 묵상 (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
오늘 복음은 예수님과 이별을 준비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주님과 끊임없이 소통할 수 있는 방법, 곧 ‘기도’에 대하여 알려 줍니다. 본문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라는 강조 용법으로 시작되며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라고 선언합니다. ‘청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이, 마치 주문을 외우기만 하면 바라는 것이 뚝딱 이루어진다는 현혹처럼 들리기도 하고, 무모한 약속으로 다가오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전제 조건이 하나 붙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청하라.’는 것입니다. 도대체 예수님의 이름으로 청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복음의 뒷부분에 그 답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청하겠다는 말이 아니다.”라고 전제하시며, 당신께서 대변인처럼 우리의 처지를 하느님께 청하여 주시겠다는 의미가 아님을 분명히 하십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강조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너희를 사랑하신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하느님에게서 나왔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곧 기도는 청탁이나 거래, 주문을 외우는 자리가 아니라 사랑과 믿음으로 소통하는 자리임을 분명히 알려 주고 계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무엇을 바라는지, 무엇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지 우리보다 더 잘 알고 계십니다. 기도는 그렇게 나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배려하시는 하느님을 만나는 자리이고, 그 만남이 주는 평화와 사랑을 체험하는 시간입니다. 이러한 사랑과 믿음의 관계 안에서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허락하시고 들어주십니다. 주문이나 주술로서 들어주시는 것이 아니라 진심 어린 사랑의 관계에서 들어주시는 것입니다.
(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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