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의 배신과 죽음으로 공석이 된 사도 한 명을 선발하는 과정이 참으로 특별합니다. 필기시험이나 심층 면접, 자기소개서 같은 것은 아예 없습니다. 생뚱맞게도 제비뽑기에 의해서 이루어집니다. ‘제비뽑기’, 요즘 들어 잘 사용하지 않기에 약간 생소한 단어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바꿔 말하면 ‘추첨’입니다. 미리 정해 놓은 글자나 기호를 종이에 적어 놓고, 그 가운데 어느 하나를 골라잡게 하여 승부, 차례 또는 경품 탈 사람 등을 가리는 방법이 제비뽑기입니다. 흥미진진하고 재미있고 스릴 있는 방법이 될 수 있겠지만, 사도를 뽑는 중요한 일을 두고 제비뽑기란 방법을 택한 것이 꽤 의아해보입니다. 사도의 발탁이란 이 중대한 일을 위해 저 같았으면 먼저 후보자들에 대한 엄밀한 사전 조사를 할 것입니다. 철저한 후보 검증작업을 거칠 것입니다. 그리고 제대로 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선택하기 위해 조용히 물밑 작업을 시작할 것입니다. 제비뽑기를 할 것이 아니라 적어도 추천을 통한 인선을 할 것입니다. 그것이 여의치 않다면 투표를 통한 과반수 이상의 득표자를 뽑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도란 중요한 인물을 뽑는데 제비뽑기는 너무나 안 어울리는 방법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제비뽑기를 통해서 마티아를 사도로 선출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합당한 이유가 있더군요.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이후 사도들의 생각은 이제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세상물’이 한층 빠졌습니다. 사도란 직책이 세속의 직책과는 철저하게 다른 봉사직이요 희생하는 자리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인간적 능력이 뛰어나다고 해서 될 것도 아니요, 철저하게도 하느님의 사람, 참 신앙인이 수행해야할 역할이 사도의 역할이라는 사실을 잘 알게 된 것입니다. 특히 수제자 베드로의 배반 사건, 총무였던 유다의 배신과 죽음 앞에 사도들은 기가 완전히 한 풀 꺾였습니다. 자신들의 나약함,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함을 잘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아주 겸손하게 변화되었습니다. 자기중심적인 삶을 탈피해서 예수님 중심적 삶을 선택하게 된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자신들의 힘과 능력, 판단력을 과신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자신들의 경험, 자신들의 논리를 내세우기보다는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기로 마음먹었던 것입니다. 전과는 확연하게 달라진 사도들의 사고방식을 엿볼 수 있습니다. 한층 겸손해지고, 한층 주님께 대한 신뢰심이 커진 것입니다. 그러한 사고의 변화가 유다 자리를 채우는 과정에서도 그대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주님, 저희는 어리석습니다. 한 치 앞도 내다볼 능력이 없습니다. 저희는 사도단 결원의 보충이라는 이 중대한 결정을 저희가 내리지 않겠습니다. 저희가 뽑지 않겠습니다. 주님 당신께서 뽑아주십시오.” 그런 기도 끝에 사도들은 제비뽑기를 실시한 것입니다. 사도단 결원 보충을 위한 사도들의 제비뽑기, 오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매사에 내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찾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리 의도대로가 아니라 주님 의도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