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하신 아버지,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름으로
이들을 지키시어,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요한 17,11ㄷ).”
“이제 저는 아버지께 갑니다. 제가 세상에 있으면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이들이 속으로 저의 기쁨을 충만히
누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저는 이들에게 아버지의 말씀을
주었는데, 세상은 이들을 미워하였습니다. 제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이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라고 비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악에서 지켜
주십사고 빕니다. 제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이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습니다. 이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아버지께서 저를 세상에 보내신
것처럼 저도 이들을 세상에 보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들을 위하여 저 자신을 거룩하게 합니다. 이들도 진리로
거룩해지게 하려는 것입니다(요한 17,13-19).”
1) 13절의 “제가 세상에 있으면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이라는 말씀은, “제가 이런 식으로
기도를 하는 이유는”이라는 뜻입니다.
지금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 기도를 바치면서 제자들이
들을 수 있도록 일부러 소리를 내서 기도를 하십니다.
<사실상 제자들 들으라고 하시는 기도입니다.>
그래서 지금 예수님의 기도는, 아버지께 바치는 기도이면서
동시에 제자들에게 하시는 당부 말씀입니다.
“이들이 속으로 저의 기쁨을 충만히 누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라는 말씀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기도를(말씀을) 듣고서
더욱 큰 용기와 힘을 얻고 영원한 기쁨을 향해
나아가기를 바란다는 뜻입니다.
2) 11절의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라는 말씀을, “이들도 우리와 함께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신앙인들의 일치는, 신앙인들끼리만 똘똘 뭉친 배타적인
단합이 아니라, 아버지와 예수님의 완전한 일치에
참여하는 일인데, 그 참여는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습니다.
선교활동은 그 일치에 함께 참여하자고
세상 사람들을 초대하는 일입니다.
여기서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름”은
“아버지의 이름”이고,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름으로
이들을 지키시어”는 하느님의 권능과 사랑으로
제자들을(신앙인들을) 보호해 달라고 청하는 기도입니다.
동시에 제자들에게 아버지의 사랑 안에서 일치를 이루기를
바란다고 당부하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이 말씀은 13장에 있는 다음 말씀에 연결됩니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3,34-35).”
여기서 ‘사랑’은 신앙인들끼리만 뭉치는 사랑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고, 바로 그 사랑이
예수님에 대한 신앙을 증명하는 강력한 증거가 됩니다.
그 사랑이 없는 일치는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범죄조직도 자기들끼리는 단합을 잘하는데,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 없이 자기들끼리만 뭉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일치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일치도 중요하지만, 사랑으로 하나 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3) 17절의 “이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십시오.” 라는
말씀은, “이들이 진리를 위해서 헌신하는 사람들이
되게 해 주십시오.” 라는 뜻이기도 하고, “이들을 진리로
무장(武裝)시켜 주십시오.” 라는 뜻이기도 하고,
진리로 무장하라고 제자들에게 당부하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권고합니다.
“주님 안에서 그분의 강한 힘을 받아 굳세어지십시오. 악마의
간계에 맞설 수 있도록 하느님의 무기로 완전히 무장하십시오.
우리의 전투 상대는 인간이 아니라, 권세와 권력들과
이 어두운 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령들입니다.
그러므로 악한 날에 그들에게 대항할 수 있도록, 그리고 모든
채비를 마치고서 그들에게 맞설 수 있도록, 하느님의 무기로
완전한 무장을 갖추십시오. 그리하여 진리로 허리에 띠를
두르고 의로움의 갑옷을 입고 굳건히 서십시오. 발에는 평화의
복음을 위한 준비의 신을 신으십시오. 무엇보다도 믿음의
방패를 잡으십시오. 여러분은 악한 자가 쏘는 불화살을
그 방패로 막아서 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의 투구를
받아 쓰고 성령의 칼을 받아 쥐십시오. 성령의 칼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늘 성령 안에서 온갖 기도와 간구를
올려 간청하십시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인내를 다하고 모든
성도들을 위하여 간구하며 깨어 있으십시오(에페 6,10-18).”
바오로 사도의 “성령의 칼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라는
말과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라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하느님의 말씀, 아버지의 말씀’은
‘구원의 진리’, 또는 ‘계시 진리’ 전체를 가리킵니다.
<성경 말씀뿐만 아니라, 신앙 교리도 포함되고,
인류 구원을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과 의지’도 포함됩니다.>
그렇게 ‘하느님의 무기’로 완전 무장을 해야만 ‘악’을 상대로 한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고, 이 세상을 하느님 나라로 변화시킬
수 있고, 세상 사람들을 하느님에게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간단하게 줄여서 표현하면, “신앙인으로서,
신앙인답게 정신 무장을 단단히 해야 한다.”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속하지는 않지만 세상 속에서 살아가야 하고,
세상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신앙생활은, 대충 아무렇게나 해도 되는 일이 아닙니다.
철저하게 해야 하고, 온갖 정성과 온 힘을 다 쏟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세속 일에 전력을 다하는 것보다
더 열성적으로, 더 강하게, 더 뜨겁게 전력을 다해서
신앙생활을 해야 하고, 선교활동을 해야 합니다.
[출처] 부활 제7주간 수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