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부활 제7주간 목요일] | |||
---|---|---|---|---|
이전글 | 오늘의 묵상 (05.16.목) 한상우 신부님 | |||
다음글 | [부활 제7주간 금요일] 오늘의 묵상 (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 | |||
작성자박영희 | 작성일2024-05-16 | 조회수272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부활 제7주간 목요일] 요한 17,20-26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해 주십시오.“
사람은 기본적으로 ‘자기 중심적’입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기본적으로 ‘나’라는 존재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며 관계 맺는다는 점에서는 동일하지요. 그래서 우리는 나와 성향이 잘 맞는 사람, 취향이 비슷하여 함께 있으면 편안한 사람, 다른 이와 갈등이나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무던하게 잘 지내는 사람하고만 어울리려고 합니다. 반면 성격이 뾰족하게 모 난 사람, 표현이나 행동이 거친 사람, 사연 많고 상처 많은 사람은 가급적 멀리 하고 싶어합니다. 그런 이들과 함께 있으면 신경 써주고 챙겨주며 손해보거나 상처입게 되는 경우가 많기에 ‘나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그들과는 거리를 두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렇게 하는게 정말 나를 지키는 일일까요? 내가 사랑으로 보살피고 섬겨야 할 ‘수많은 예수님’들을 그대로 방치한 채로 내가 맘껏 기뻐할 수 있을까요? 나를 원망하는 수많은 형제들을 미움 속에 그대로 둔 채 내가 맘껏 행복할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없을 겁니다. 나중에 하느님 나라에서 감당해야 할 부분들이 걱정되고 신경쓰여서, 무엇을 해도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고 그 기쁨도 제대로 누리지 못하게 될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가 되야함을 강조하십니다. 그런데 그분께서 말씀하시는 참된 ‘일치’는 나를 중심에 두고 상대방에게 양보와 희생을 강요하는 방식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오해와 갈등, 상처와 미움만 커질 뿐이지요. 그렇다고 중심을 상대방에게 두고 무조건 그에게 맞추려고 하면 그 과정에서 내가 지치고 소진되어 가다가 결국 나 자신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관계의 중심을 하느님께 두어야 합니다. 중심을 바라보며 같은 거리만큼 떨어진 점들이 모여 하나의 원을 이루는 것처럼, 하느님을 중심에 두고 같은 믿음으로 그분을 바라보며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느님 안에서 모두가 그분께 공평하게 사랑받으며 그분 자녀라는 존엄성을 동등하게 누릴 때, 비로소 참된 일치를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일치를 이룬 이들은 상대방과 나의 차이를 ‘틀림’이 아닌 ‘다름’으로 받아들입니다. 학연, 지연, 혈연, 사상, 이념, 종교라는 틀에 다른 사람을 억지로 끼워맞추려고 들지 않습니다. 그렇게 상대방과 나의 다름을 개성으로 여겨 존중하는 호의적 분위기 속에서 다양성 안의 일치를 만들어갑니다. 그렇게 우리 모두의 삶이 풍요롭고 행복해지지요. 서로 다른 악기와 음색이 모여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듯, 우리 삶은 그렇게 믿음과 사랑으로 하느님 안에서 다양성 안의 일치를 이루어야 삶이 주는 풍성하고 다채로운 맛들을 만끽하며 기쁘게 살아갈 수 있는 겁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그 맛을 보여주시기 위해 당신과 아버지께서 신뢰와 사랑을 바탕으로 이루고 계시는 그 일치 안에 우리를 초대하시는 것이지요.
구원이란 현세에서 미쳐 못누린 부귀영화를 내세에서 누리는게 아닙니다. 나를 아끼고 사랑하시는 하느님과 ‘하나’되는 것이고, 하느님에 대해 진정으로 ‘아는’ 것이며, 하느님 사랑 ‘안에서’ 사는 것이고, 하느님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세속적인 이익을 얻는데만 신경쓰지 말고, 내가 좋아하고 편한 이들하고만 하나가 되려고 하지 말고, 믿음과 사랑으로 주님과 그리고 형제들과 하나 되기 위해 노력해야겠습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