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부활 제7주간 금요일] 오늘의 묵상 (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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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업로마노 | 작성일2024-05-16 | 조회수282 | 추천수6 | 반대(0) 신고 |
2024년 05월 17일 금요일 [부활 제7주간 금요일] 오늘의 묵상 (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
예수님께서는 지상 생활을 마무리하시면서 베드로에게 당신의 양 떼를 맡기십니다. 당신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한 그였지만, 예수님께서는 생각을 바꾸지 않으시고 “내 양들을 돌보아라.”라는 사명을 주십니다. 그리고 이는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물음과 함께 주어집니다. 그리스 말에는 ‘사랑’을 뜻하는 낱말이 세 개가 있습니다. 격정적이고 본능적인 사랑을 뜻하는 ‘에로스’, 호의적 감정과 끌림을 뜻하는 ‘필로스’,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상대를 배려하는 ‘아가페’입니다. 예수님의 첫 번째와 두 번째 물음에는 ‘아가파오’(‘아가페’의 동사형)가 쓰이는데, 이 동사를 통하여 ‘너를 희생할 만큼 나를 사랑하는지’를 베드로에게 물으십니다. 이에 베드로는 ‘필레오’(‘필로스’의 동사형)를 통하여, 예수님을 좋아하고 기쁜 마음으로 따르지만, 아직 자신을 희생할 만큼의 사랑은 아님을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목숨을 바칠 만큼 큰 사랑인지를 묻는 예수님의 물음과, 좋아하지만 그 정도는 아니라는 베드로의 대답이 두 번 되풀이되자, 예수님께서는 세 번째 물음의 내용을 바꾸십니다. 우리말 성경에서 “예수님께서 세 번이나 ‘나를 사랑하느냐?’(‘필레오’) 하고 물으시므로” 라고 옮긴 문장은, “예수님께서 세 번째에는 ‘나를 사랑하느냐?’(‘필레오’) 하고 물으시므로”로 옮기는 것이 더 좋을 듯합니다. 예수님께서 첫 번째와 두 번째 물음에서 자신을 희생할 정도로 당신을 사랑하는지(‘아가파오’) 물으실 때 베드로는 예수님을 인간적으로 사랑할(‘필레오’) 뿐임을 고백하자, 세 번째로 당신을 인간적으로는 사랑하는지(‘필레오’) 고쳐 물으신 것인데, 이 상황이 슬픈 베드로는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필레오’) 줄을 주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하고 대답합니다. 그러나 베드로의 사랑은 인간적인 사랑(‘필로스’)에서 참된 사랑(‘아가페’)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독서에서 묘사된 바오로처럼, 베드로 또한 죽음으로 자신의 사랑을 증언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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