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7주간 화요일] 오늘의 묵상 (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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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업로마노 | 작성일2024-05-20 | 조회수256 | 추천수5 | 반대(0) 신고 |
2024년 05월 21일 화요일 [연중 제7주간 화요일] 오늘의 묵상 (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사이의 ‘서열 논쟁’으로 생긴 갈등을 정리하여 주십니다. 제자들은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길에서 논쟁”하는데, 사실 모든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갈등은 “욕심”에서 비롯합니다. 독서는 이를 매우 날카롭게 묘사합니다. “여러분의 싸움은 어디에서 오며 여러분의 다툼은 어디에서 옵니까? 여러 가지 욕정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까? 여러분은 욕심을 부려도 얻지 못합니다. 살인까지 하며 시기를 해 보지만 얻어 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또 다투고 싸웁니다.” 복음은 이러한 갈등과 불화를 해결할 방법으로 세 개의 이미지(꼴찌, 종, 어린이)를 제시합니다. “꼴찌”로 옮긴 그리스 말 ‘에스카토스’는 끝이나 종말 또는 마지막을 의미하며 맨 끝자리의 ‘무의미한 존재’나 ‘쓸모없는 존재’를 가리킵니다. “종”으로 옮긴 그리스 말 ‘디아코노스’ 또한 식탁에서 봉사하는 이를 뜻합니다. “어린이”로 옮긴 그리스 말 ‘파이돈’은 세 살에서 다섯 살 정도의 아이들, 어린이라고 보기에는 아직 어리고 연약한 이들을 말합니다. 결국 이 세 개의 이미지를 통하여 “첫째가 되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노력 대신 힘 없고 나약함을 받아들이는 겸손을 가지도록 제안하는 것입니다. 복음에서는 그것이 바로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독서에서는 “그러면 그분께서 여러분을 높여 주실 것”이라고 합니다. 꼴찌가 되고 누군가의 종이 되며 연약한 아이처럼 되었을 때, 우리는 비로소 가식이나 위선 없이 진심으로 하느님께 의지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태야말로 구원의 초대이고 은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비로소 그때 하느님께서는 바닥에 있는 우리를 들어 올려 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어린이 하나를 가운데 세우시고 안아 주셨듯이 말입니다.
(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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