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1,42.45)
오늘은 성모성월과 가정의 달의 마지막 날입니다. 화려한 꽃과 눈부신 신록이 함께 어우러진 5월의 마지막 날인 오늘, 우리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을 기념합니다. 환희의 신비 제2단, 가브리엘 대천사로부터 예수님의 잉태 소식을 전해 들은 마리아가 친척 엘리사벳을 방문하여 하느님의 놀라운 사랑을 함께 나누는 것을 오늘 전례는 기념합니다.
성격상 저는 어린 왕자처럼 어떤 누군가가 저를 방문한다고 할 때, 약속 시간 전부터 준비하고, 방문할 사람을 생각하며 기다립니다. 누군가 자신을 방문하고, 자신이 누군가를 방문한다는 것은 일상적인 평범한 일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결코 잊혀질 수 없는 아주 특별한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노인 병원에서의 생활 경험에 의하면 어르신들은 가족의 방문을 학수고대합니다. 가족이 자신을 방문한다는 것은 가족과 속함의 관계 속에 살고 있다는 뜻이며,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을 때 어르신들이 느끼는 감정은 가족들로부터 버림받은 느낌과 아울러 망각된 느낌이며, 이러한 느낌은 결국 살아 온 날들에 대한 후회를 그리고 삶의 의욕을 잃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방문하는 동안 나누는 대화나 함께 먹는 일도 중요하지만, 방문 그 자체는 노인들에게는 참으로 소중한 사랑의 경험이 되고 축복의 순간입니다. 기다려도 아무도 오지 않는다면 여기에 분명 존재하지만, 여기에 존재하지 않은 존재처럼 느낄 것이며, 그 순간 살아 온 세월에 대한 자책과 후회를 뼈저리게 느낄지도 모릅니다.
오늘 복음에 보면 어머니 마리아는 서둘러 먼 곳에 떨어져 사는 친척 언니 엘리사벳을 방문합니다. 지극히 일상적인 일이지만 그리스도교 관점에서, 이 방문과 만남은 아주 중요한 구원 사건이며, 이 사건을 통해서 인간관계에서 방문과 만남의 새로운 의미를 던지는 획기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물론 인간적인 측면에서 볼 때 친척 언니를 방문한 일이야 무슨 대수이겠습니까? 하지만 두 사람 관계를 단지 친척이라는 입장에서보다는 두 분 사이를 결합하고 연결해 주는 아주 특이하면서도 특별한 처지가 서로를 향해 나아가고 맞아들이는 계기가 될 수도 있었으리라 봅니다. 이 인간적인 만남 안에 하느님께서 개입하시어 이 만남이 구원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사건으로 각인되었습니다. ‘노사연의 만남’이라는 노랫말이 아니더라도 두 분의 만남은 은총의 만남이었고 하느님의 섭리였습니다. 무엇을 바라고 이루어진 방문이 아니라 충만한 기쁨을 함께 나누고 함께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한 존재와 존재, 은총과 은총의 만남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두 분의 만남은 단지 두 분만의 만남이 아니라 장차 만나게 될 구세주이신 예수님과 주님의 길을 예비하게 할 세례자 요한의 만남 그리고 구약과 신약의 만남 등, 이 모든 만남을 포함한 참으로 의미로운 만남이었습니다.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한 새로운 초대를 받고서 함께 같은 길, 곧 하느님의 섭리를 향해 걸어가고,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바라볼 영적 동반자가 있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 두 분 서로에게 커다란 위로와 힘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오늘 미사 본기도문은 『동정 마리아께서 엘리사벳을 방문하도록 하셨으니, 저희도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따라 살며』라고 교회가 기도를 바치는 것은 성모님의 엘리사벳의 방문이 곧 성령의 이끄심이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방문과 만남은 두 분 다 하느님의 약속을 믿는 분들이셨기에 단지 인간적인 위로와 격려를 위해 그토록 먼 길을 서둘러 가시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두 분은 하느님께서 자신들에게 이루신 하느님의 놀라운 일을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서로는 서로의 거울이었습니다. 마리아는 엘리사벳에게 베푸신 하느님의 자비를, 엘리사벳은 마리아에게 베푸신 하느님의 크신 자비를 확인하고 하느님의 자비를 확인하는 만남이었습니다. 하느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찬양하기 위해 만나셨습니다. 이 찬양의 결과가 바로 온 세대가 즐겨 기도하는 ‘성모송과 마리아의 노래’입니다. 그러기에 엘리사벳은 자신에게 향한 마리아의 기쁨과 행복에 넘친 축하 인사말을 듣고서 마리아께서 받은 하느님의 크신 축복을 알아보며 이렇게 칭송합니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1,42.45) 이라고 찬양합니다. 마리아 역시 엘리사벳의 칭송에 겸손하게 응답하며 주님을 찬양합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1,46.~48.49)
성모님과 성녀 엘리사벳의 만남을 묵상하면서 우리도 신앙의 기쁨을 함께 나눌 누군가를 방문하고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제 마음을 설레게 하고 울렁거리게 합니다. 하느님 섭리는 단지 두 분만이 아니라 우리가 누군가를 방문할 때 주님은 저희와 함께 동행해 주실 것이며 우리의 만남을 축복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우리의 방문과 만남 안에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크신 축복을 내려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현존을 느끼며 주님의 현존 안에서 하느님을 찬미하고 찬양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여러분은 누구를 어떤 마음의 자세로 방문하시렵니까? 행복하고 축복이 넘치는 방문이 되길 바랍니다. “주님을 찬송하여라. 그 이름 높이 불러라.” (이12,4)
잠시 삶이란 만남의 연속이고 오늘 우리의 만남의 참으로 은혜로운 만남, 아름다운 사랑의 만남이 되길 바라며 정채봉의 「만남」을 읽으면서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가장 잘못된 만남은 생선과 같은 만남입니다. 만날수록 비린내가 묻어 나니까요 가장 조심해야 할 만남은 꽃송이 같은 만남입니다. 피어있을 때는 환호하다가
시들면 버리니까요 가장 비천한 만남은 건전지와 같은 만남입니다. 힘이 있을 때 간수하고 힘이
다 떨어졌을 때 버리니까요 가장 시간이 아까운 만남은 지우개 같은 만남입니다. 만남이 순식간에 지워져
버리니까요' 가장 아름다운 만남은 손수건 같은 만남입니다. 힘이 들 때는 땀을 닦아주고
슬플 때나 기쁠 때 눈물을 닦아 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