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9주간 목요일] 오늘의 묵상 (최정훈 바오로 신부) | |||
---|---|---|---|---|
이전글 |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 |||
다음글 | 사랑(信仰)의 出發點은 하느님. (마르12,28-34) |1| | |||
작성자김종업로마노 | 작성일2024-06-05 | 조회수205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2024년 06월 06일 목요일 [연중 제9주간 목요일] 오늘의 묵상 (최정훈 바오로 신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모든 율법을 종합하는 사랑의 이중 계명을 가르치십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자기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안다면, 이 두 계명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인간에게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은 거의 본성과도 같아 이겨 낼 수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다른 이를 사랑할 때도 그 사랑 안에는 언제나 자신을 향하는 사랑이 섞여 있습니다. “너를 사랑한다.”라고 말하는 그 순간조차도 ‘너’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나’입니다. 프랑수아 바리용 신부는 인간의 근원적인 자기애(自己愛)와, 그로 말미암아 순수하게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는 무능함을 ‘원죄’로 봅니다. 상대방이 나에게 전부일 수 없게 하는 ‘자신을 향한 사랑’이 바로 원죄입니다(『흔들리지 않는 신앙』, 47-48면 참조). 자기애를 이겨 내려면 끊임없이 하느님을 중심에 두려고 노력하여야 합니다.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은 하느님과 이웃을 자신의 필요에 따라 이용하거나 배제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중심에 두었을 때 그 누구도 결코 도구화 되거나 소외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다른 사람을 향하는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첫 번째 계명을 충실히 지키면, 이웃을 사랑하라는 두 번째 계명이 자연스럽게 실현됩니다. 이러한 삶이 결국 자기 자신을 참되게 사랑하는 삶입니다. 사랑으로 창조되고 사랑으로 충만하여지는 인간은, 순수하고 참된 사랑을 할 때 본모습을 찾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을 참으로 사랑하고 잘 돌보려면 이기주의적인 자기애에서 벗어나, 하느님과 이웃을 향한 순수한 사랑의 시선을 찾아야 합니다. 자기애를 버리고 하느님을 향할 때, 진정으로 이웃을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할 수 있으며 이것이 바로 하느님 사랑의 신비입니다.
(최정훈 바오로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