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나의 십자가를 기억하면서 / 예수 성심 대축일 [나해] / 사제 성화의 날(요한 19,31-3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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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 작성일2024-06-06 | 조회수190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나의 십자가를 기억하면서 / 예수 성심 대축일 [나해] / 사제 성화의 날(요한 19,31-37)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다음 금요일에 지내는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은 예수님의 거룩한 마음을 공경하며, 그 마음을 본받고자 하는 날이다. 또 해마다 이 날을 한국 교회는 사제들이 대사제이신 예수님을 본받아 ‘사제 성화의 날’로 지낸다. 즉 교회의 모든 이가 사제직의 존귀함을 깨닫고 사제들의 성화를 위하여 ‘기도와 희생을 바치는 날’이기도 하다. ‘이튿날 안식일은 큰 축일이었으므로, 유다인들은 그날에 시신이 매달려 있지 않게 하려고 십자가에 못 박힌 이들의 다리를 부러뜨리고 시신을 치우게 하려고 빌라도에게 요청하였다. 그리하여 군사들이 십자가에 달린 첫째와 또 다른 이의 다리를 부러뜨렸다. 그러나 예수님께 가서는 이미 숨지신 것을 보고, 창으로 그분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자 ’피와 물‘이 흘러 나왔다.’ 십자가에 매달린 이의 다리를 부러뜨리는 조치는, 처형된 이를 그날로 묻어야 한다는 규정을 지키려 목숨이 붙은 사람을 바로 죽게 하려는 것이다. 또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는 것은 우선 자연적인 현상일 수 있다. 사망 직후에 ‘피’와 함께 흘러나오는 ‘물’은 늑막에서 나오는 림프일 수도. 그러나 여기에는 더 깊은 뜻이 담겨 있다. 당시 그들의 상식으로는 사람의 몸은 물과 피로 되어 있기에, 이 두 가지가 흘러 나왔다는 것은 예수님의 실질적인 죽음을 드러내었다나. 한편 예수님께서 피와 물을 흘리셨다는 사실은 성령의 내림을 가리키는 표징으로 간주하면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성사를 가리키는 상징으로 보기도 한다. 곧 물은 세례성사를, 피는 성체성사를 뜻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더 구체적으로 해석해, 예수님의 열린 옆구리에서 나오는 피와 물을 교회의 탄생을 보기도 한다. 아무튼 당시에는 예수님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물과 피를 세례와 성체성사의 상징으로 보았다. 그래서 그 물은 우리의 영혼을 깨끗하게 하는 은총이요, 피는 무한하신 사랑으로 예수님을 희생 제물로 바침으로써 우리에게는 생명의 양식이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에 측은지심을 느낀다. 그분께서 목숨 바쳐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해야만 할 게다. 이렇게 믿음의 삶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하여 다른 사람을 사랑할 때, 비로소 우리는 하느님과 성심의 사랑을 이해할 수 있고 그 성심의 빛 속에 살아갈 수 있을 게다. 예수님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피와 물은 우리의 생명을 살린다. 예수님께서는 사랑 때문에 당신 자신을 희생하셨고, 그 사랑 때문에 우리를 위한 양식이 되셨다. 자식은 부모 고통을 알 때 쉽게 벗나가지 않는다. 가족애는 미움과 사랑땜에 울어 볼 때 싹을 틔운다. 나이를 먹었다고 모두 어른인 것은 아니다. 고통의 옷을 입어야만 어른이 된다. 남을 위해 아픔을 겪어 본 이라야 어른 소리를 듣는다. 몸은 어른인데 생각은 어린애인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어려움을 피해 다녔기에. 고뇌가 없으면 성숙도 없고, 발전도 없는 게 인생이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마음을 묵상해야 변화를 만날 게다.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 위에서 모욕의 길을 걸으셨다. 죄 없는 분께서 그토록 황당한 일을 당하신 건 억울함의 극치다. 그런데도 받아들이시며 참아내셨다.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예수님을 이해할 수 없다. 우리 자신의 십자가를 불평하고 외면하려들면 더욱 모르게 되리라. 오늘은 예수님 마음을 더욱 깊이 묵상하는 날이다. 그분을 기억하며, 나의 십자가를 끌어안는 날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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