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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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 작성일2024-06-07 | 조회수476 | 추천수8 | 반대(0) |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좋은 나무에는 좋은 열매가 열리고, 나쁜 나무에는 나쁜 열매가 열린다.” 비슷한 말씀으로 밀과 가라지의 비유가 있습니다. 농부가 밭에 밀을 심었는데 밀밭에 누군가 가라지를 심었다고 합니다. 농부는 밀과 가라지를 구분하지 않고 키운다고 합니다. 가라지를 뽑으려다 밀을 뽑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추수의 때가 되면 가라지는 버려질 것이라고 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하느님을 닮은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사람에게는 하느님의 ‘숨’을 불어 넣어 주셨습니다. 하느님을 닮은 사람, 하느님의 숨을 받은 사람은 분명 좋은 나무입니다. 하느님의 숨을 받은 사람은 분명 알곡을 맺는 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사람은 자유의지에 따라서 좋은 나무인 하느님의 숨을 나쁜 나무로 만들기도 합니다. 사람은 자유의지에 따라서 밀인 하느님의 숨을 가라지로 만들기도 합니다. 사람의 마음은 마치 반도체와 같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면 은총의 불이 켜집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은총의 불이 꺼집니다. 아직은 그 실체가 잘 규명되지 않지만, 미래의 세계를 주도할 수 있는 학문 중의 하나가 ‘양자역학’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는 물질은 어느 한 공간과 시간에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양자역학의 세계에서는 물질이 존재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합니다. 관찰자가 바라보면 물질이 존재하다가, 관찰자가 시선을 돌리면 물질이 사라지기도 합니다. 양자컴퓨터와 인공지능이 만나면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새로운 세계를 볼지도 모릅니다. 사람의 마음은 물질로 계량화할 수 없습니다. 무게를 잴 수도 없고, 부피를 알 수도 없고, 크기를 측정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 사람의 마음이 사람을 좋은 나무로 만들기도 하고, 사람을 나쁜 나무로 만들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의 마음이 알곡을 맺는 밀이 되기도 하고, 쭉정이로 버려지는 가라지가 되기도 합니다. 마음먹기에 따라서 상황이 바뀌기도 합니다. 긍정의 마음을 가지면 극한의 환경에서도 희망의 빛을 볼 수 있습니다. 부정의 마음을 가지면 풍족한 환경에서도 근심의 어둠이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제 마음을 잘 드러내는 말이 있습니다. ‘잘했네! 잘될 거야!’ 저는 입버릇처럼 하는 말인데 그렇게 하면 엉킨 실타래가 풀리듯이 어려운 문제들이 해소되곤 했습니다. 오늘은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 언덕을 오르시기를 원하셨을까요? 십자가의 무게가 무거워 3번씩이나 넘어지면서도 끝까지 십자가를 지고 가시기를 원하셨을까요? 옆구리를 창에 찔리시기를 원하셨을까요? 제자들도 다 도망가고, 혼자서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하시기를 원하셨을까요? 아니면 평범하게 직장을 구하고, 좋은 여자 만나서 가정을 이루기를 원하셨을까요? 손자, 손녀들의 재롱을 보면서 살기를 원하셨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성모님의 마음을 헤아려서 그렇게 고난의 길을 가셨을까요? 예전에 학생운동을 하던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좋은 대학교에 입학했고, 졸업만 하면 좋은 직장에 취직할 수 있던 친구들입니다. 그런 친구들이 민주화를 외치며, 데모했고, 데모하는 과정에서 형사들에게 쫓기게 되었습니다. 학생들은 수배자가 되었고, 감옥에도 가게 되었고, 학교에서 제적당하기도 하였습니다. 좋은 직장은 구할 수 없게 되었고, 그들이 그렇게 바랐던 민주화는 이루어졌지만, 많은 학생은 아직도 고문의 후유증을 겪고 있으며, 가난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 학생들의 어머니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자식의 건강, 성공, 출세, 결혼을 바랄 것입니다. 그것은 당연한 생각입니다. 하지만 어떤 아들은 세상 것들을 추구하기보다는 하느님의 뜻을 먼저 생각합니다. 가난한 이들을 돕는 일, 불의한 일에 저항하는 일, 벗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일을 합니다. 성모님께서는 하느님의 일을 먼저 하였던 예수님을 위해서 기도하였습니다. 억울하게 비참하게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아드님을 가슴에 묻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모님의 마음을 티 없으신 마음이라고 말합니다. ‘천주의 성모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시고,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 복되시고 영화로우신 동정녀여!’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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