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예수고난회 김준수 신부님의 연중 제10주간 수요일: 마태오 5, 17 - 1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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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기승 | 작성일2024-06-11 | 조회수180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기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5,17) 자연과 언어 사이에 있는 간극 곧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우리는 쉽게 감지하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연은 연속성, 끊어지지 않고 쭉 이어지는 상태나 성질을 늘 함유하고 있지만, 이를 표현하는 언어는 불연속성, 분절성을 담고 있습니다. 어쩌면 자연과 언어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처럼 구약과 신약 사이에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우리는 감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구약의 핵심인 율법과 예언의 정신은 신약에도 연속적으로 이어지지만, 동시에 신약에 와서 불연속성도 드러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 까닭은 구약의 율법은 낡고 화석화된 언어라면, 신약의 복음은 살아있는 자연 곧 생물과 같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기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5,17)하고 말씀하신 의도는 무엇일까요. 이는 구약의 핵심인 율법과 예언의 근본이자 본질인 ‘사람과 사람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충실한 계약 곧 자비와 사랑은 변할 수 없기에 이어지겠지만, 본래의 의도와 정신이 사라진 채 율법주의적인 문자는 파기하시겠다는 의도를 표명하신 것으로 이해됩니다. 세상과 사람을 사랑하셔서 율법과 예언을 통해 하느님 당신의 약속을 충실히 이행하셨지만, 세상과 사람은 당신의 뜻을 거역했기에 마침내 당신 외아들이신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당신 구원계획을 완성 곧 구원하시려는 의지를 밝히신 것입니다. 율법은 한계를 지닌 인간의 언어, 불연속성이라면 복음은 예수님의 인격 곧 예수님의 존재와 삶 자체이기에 단절과 분절이 아닌 영속하고 영원한 것입니다. 당신이 바로 사람의 구원자이시며, 사랑으로 사람이 되신 당신의 강생과 당신의 파스카로 말미암아 세상과 사람의 구원은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기에 율법의 완성은 율법 준수, 문자라는 형식적이고 기능적인 실천에 있지 않고, 율법의 근본인 하느님의 모상적 존재인 사람을 구원하고 사랑하는 일, 곧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로13,10)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유언으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13,34)하고 말씀하셨고, 이 말씀의 실행이 곧 완성입니다. 사람에 대한 사랑이 바로 연속성과 불연속성의 매개이며 본질입니다. 사실 율법이 필요한 때가 있었죠. 사도 바오로는 “율법은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도록,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감시자 노릇을 하였습니다.”(갈3,24)하고 가르치면서도, 아울러 “어떠한 인간도 율법에 따른 행위로 하느님 앞에서 의롭게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통해서는 죄를 알게 될 따름입니다.”(로3,20)하고 선언하십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5,19)라고 말씀하신 의도는 바로,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아,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 않는다.”(23,4)하고 말씀하신 점을 통해서도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세상에서 가장 크고 높은 사람이라고 자처하던 율법 학자들처럼 ‘입술’로만 살지 말고, 비록 세상에서 가장 작은 자처럼 보일지 몰라도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 되기 위해 사랑의 삶을 살라고 이렇게 당부하십니다.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나라에서 큰 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5,19)하고 확언하십니다. 하늘나라에서 존재의 크기는 바로 율법과 복음의 근본정신인 사랑을 존재와 삶으로 실행하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율법과 복음의 중심은 사람이며, 얼마나 사람을 사랑하며 살았느냐에 달려 있기에 무엇보다 더 우선하는 것이 바로 사람입니다. 이것이 지금도 유효한 까닭은 바로 소위 우리가 말하는 진리의 영속성 때문입니다. 사랑만이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며, 이를 예수님은 당신 존재와 삶을 통해 우리에게 본보기를 보여 주시고 그 흔적을 따라 성령과 함께 뒤따라오기를 지금도 바라시는 것입니다. “주님, 당신의 행로를 가르쳐 주시고, 당신의 진리로 저를 이끄소서.”(시25,4)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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