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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송영진 신부님_<선은 악보다 강하고, 언제나 항상 선이 악을 이깁니다. 시간이 좀 걸리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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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4-06-17 조회수216 추천수1 반대(0) 신고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하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또 너를 재판에 걸어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 누가 너에게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마태 5,38-42).”

 

 

 

1) 이 말씀에서, 대사제가 예수님을 재판할 때

 

있었던 일이 연상됩니다.

 

“대사제는 예수님께 그분의 제자들과 가르침에 관하여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나는 세상 사람들에게

 

드러내놓고 이야기하였다. 나는 언제나 모든 유다인이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가르쳤다. 은밀히 이야기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런데 왜 나에게 묻느냐? 내가 무슨 말을 하였는지

 

들은 이들에게 물어보아라. 내가 말한 것을 그들이 알고 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곁에 서 있던

 

성전 경비병 하나가 예수님의 뺨을 치며, ‘대사제께

 

그따위로 대답하느냐?’ 하였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잘못 이야기하였다면 그 잘못의

 

증거를 대 보아라. 그러나 내가 옳게 이야기하였다면

 

왜 나를 치느냐?’(요한 18,19-23)”

 

이 이야기를 번역되어 있는 대로만 읽으면, 예수님께서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라는 당신의

 

가르침과는 다르게 행동하신 것으로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예수님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마태 23,3) 바리사이들 같은 분이 되어버립니다.

 

우선 먼저 우리말 성경의 번역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스어에 존댓말이 없긴 한데, 우리말로 옮길 때

 

예수님 말씀을 존댓말로 번역하는 것이 더 좋았을 것입니다.

 

사실 재판을 받는 피고인이 재판장에게 “왜 나에게 묻느냐?”

 

라고 말하는 경우는 실제 현실에서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겸손하신 분이니 실제로 대사제에게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성전 경비병을 향해서 하신 말씀도 엄하게 꾸짖는 말씀이

 

아니라, 부드럽게 타이르는 말씀으로 번역했다면, 또 존댓말로

 

번역했다면 분위기와 느낌이 완전히 바뀌게 됩니다.

 

어떻든 예수님께서 다른 뺨을 돌려 대신 것은 아니지만,

 

‘폭력을 포기하여라.’, 또 ‘앙갚음하지 마라.’ 라는

 

당신의 가르침을 그대로 실행하신 것은 맞습니다.

 

 

 

2) 재판 때 예수님께서는 그것보다 훨씬 더 심한

 

모욕과 폭행을 당하셨습니다.

 

“그때에 그들은 예수님의 얼굴에 침을 뱉고 그분을 주먹으로

 

쳤다. 더러는 손찌검을 하면서, ‘메시아야, 알아맞혀 보아라.

 

너를 친 사람이 누구냐?’ 하였다(마태 26,67-68).”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용서하셨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카 23,34).”

 

베드로 사도는 그 일들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분께서는 모욕을 당하시면서도 모욕으로 갚지 않으시고

 

고통을 당하시면서도 위협하지 않으시고, 의롭게 심판하시는

 

분께 당신 자신을 맡기셨습니다(1베드 2,23).”

 

또 히브리서 저자는 이렇게 권고합니다.

 

“우리 믿음의 영도자이시며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그분께서는 당신 앞에 놓인 기쁨을 내다보시면서, 부끄러움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십자가를 견디어 내시어, 하느님의 어좌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죄인들의 그러한 적대 행위를 견디어

 

내신 분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낙심하여 지쳐 버리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히브 12,2-3).”

 

 

 

3) 사도행전에 예수님의 이야기와 비슷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오로가 최고의회 의원들을 유심히 바라보고 나서 말하였다.

 

‘형제 여러분, 나는 이날까지 하느님 앞에서 온전히 바른

 

양심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러자 하나니아스 대사제가

 

그 곁에 서 있는 자들에게 바오로의 입을 치라고

 

명령하였다. 그때에 바오로가 그에게 말하였다.

 

‘회칠한 벽 같은 자, 하느님께서 당신을 치실 것이오!

 

율법에 따라 나를 심판하려고 앉아 있으면서,

 

도리어 율법을 거슬러 나를 치라고 명령한단 말이오?’

 

그 곁에 서 있던 자들이 ‘하느님의 대사제를 욕하는

 

것이오?’ 하자, 바오로가 말하였다. ‘형제 여러분, 저분이

 

대사제인 줄은 몰랐습니다. 사실 성경에도 ′네 백성의 수장을

 

저주해서는 안 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사도 23,1-5)”

 

대사제가 바오로 사도의 입을 치라고 명령한 것은, 바오로

 

사도의 말이 신성 모독죄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자신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고, 대사제가 율법대로 재판하지 않는 것을 항의했습니다.

 

<아직 유죄가 확정되지 않았는데도 범죄자 취급을 한 것은

 

율법을 어긴 일입니다.>

 

5절의 말도, 사과하는 말이 아니라 대사제를 꾸짖는 말입니다.

 

대사제답지 않게 행동함으로써 대사제라는 것을 알아보지

 

못하게 한 것은 대사제 자신의 탓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경우와 바오로 사도의 경우를 합해서 생각하면,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라는 예수님 말씀은, 악행을 당해도

 

그냥 참으라는 뜻이 아니고, 악에 굴복하라는 뜻도 아닙니다.

 

같은 악행으로 앙갚음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에게

 

좋은 일을 해 줄 뜻을 품으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스스로 복수할 생각을 하지 말고 하느님의 진노에

 

맡기십시오. 악에 굴복당하지 말고

 

선으로 악을 굴복시키십시오(로마 12,17.19.21).”

 

우리는 세상의 악을 물리치고 정의와 선을 실현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방법은 반드시 ‘선’이어야 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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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연중 제11주간 월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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