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11주간 화요일] 오늘의 묵상 (최정훈 바오로 신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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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업로마노 | 작성일2024-06-18 | 조회수161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2024년 06월 18일 화요일 [연중 제11주간 화요일] 오늘의 묵상 (최정훈 바오로 신부)
복음은 하느님께서 완전하신 분이시라고 전합니다. 그런데 완전함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루카 복음서에 따르면, 주님의 완전함은 그분의 자비하심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6,36 참조). 하느님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자에게나 비를 내려 주시는 자비로우신 분이십니다. 아합 임금과 같은 악인도, 자신을 낮추고 용서를 청하기만 하면 용서하시는 자비로우신 분이십니다. ‘하느님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라는 말씀처럼 우리도 하느님을 닮아 완전해져야 합니다. 완전해진다는 것은 하느님처럼 자비롭고 용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하기는 어렵습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용서하는 것은 원수가 용서받을 자격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이 사랑과 용서는 자비하신 하느님과 당신을 못 박은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신 예수님의 사랑에 바탕을 둡니다. 또한 자비와 용서는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자신에게 잘못한 이를 더는 미워하고 싶지 않은데도, 계속 미움과 원망 속에 휩싸인 자신에게 실망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다른 사람을 향한 미움은 자신에게 계속 상처를 냅니다. 그래서 다른 이에 대한 자비와 용서는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는 첫 시작이기도 합니다. 용서는 마음이 완전히 풀렸을 때만 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용서하는 행위’는 ‘완전한 용서’를 향하여 첫발을 내딛는 것입니다. 완전한 용서는 아니지만, 자비로운 마음에서 시도한 이 용서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을 지배하던 분노를 녹이고, 연민과 사랑을 자아내며 마침내 완전한 용서로 이끌 것입니다.
(최정훈 바오로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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