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 가톨릭교회 안에서 성인(聖人)들의 축일은 하나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분들께서 돌아가신 날, 다시 말해서 천상 탄일을 축일로 정해 기억하고 기념합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세례자 요한의 천상 탄일이 아니라, 지상에서의 탄생 축일을 경축합니다. 그에게는 축일이 두 개입니다. 탄생 대축일과 수난 기념일. 그만큼 세례자 요한은 등급이 높은 성인인 것입니다. 그를 성인 중에서 대 성인으로 인정하며 각별한 공경과 예우를 갖추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30년 세월을 나자렛에서 조용히 지내셨듯이, 세례자 요한 역시 오랜 세월 광야에 머물면서 침묵과 기도 속에 내공을 닦았습니다. 마침내 그가 세상 밖으로 나와서 외치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환호했고, 그는 일약 전국구 스타로 발돋움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요르단 강으로 그를 찾아와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자 헤로데 조차 두려워할 정도였습니다. 그로 인해 세상 사람들이 ‘혹시 이분이 왕이 아닐까?’ 기대했지만, 그럴 때 마다 세례자 요한은 정확하고 단호하게 선을 긋습니다. “나는 왕이 아니오. 나는 그분의 신발끈을 풀어드릴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오. 나는 잠시 있다 사라지는 안개 같은 존재, 한 줄기 연기 같은 존재입니다.” 우리 교회가 세례자 요한을 성인 중의 성인으로 추앙하는 이유는 그가 지녔던 탁월한 겸손의 덕 때문입니다. 이토록 겸손한 세례자 요한의 신원의식은 뒤에 오실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무런 무리 없이 연착륙하실 수 있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 사제 수도자들, 그리스도인들 역시 때로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로서의 역할에 충실해야 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향해 “너희는 누구냐?”라고 질문을 던질 때, 솔직하게 소개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닌 존재, 티끌 같은 존재입니다. 주님 자비를 힘입지 않으면 단 한 순간도 홀로 설 수 없는 나약한 존재입니다. 주님 크신 사랑으로 인해 오늘 제가 여기 서 있습니다. 저는 제 삶을 통해 주님을 증거합니다. 저는 이 세상 안에 주님께서 현존하심을 외치는 광야의 소리일 뿐입니다.” 예언자로서의 삶, 어쩔 수 없이 고독합니다. 원치도 않았는데, 하느님께서는 자신을 예언자로 부르십니다. 그리고 사명을 주시는데, 때로 죽기보다 힘든 숙제입니다. 완전히 귀먹은 백성들을 향해, 이미 물 건너간 사람들을 향해, 다시 돌아오라는 하느님의 메시지를 전해야만 합니다. 거듭되는 외침에도 사람들의 몰이해, 그로 인한 박해는 계속됩니다. 결국 외로운 투쟁을 거듭하다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맙니다. 그러나 예언자들의 죽음은 절대 헛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헌신과 희생의 결과 하느님의 구원 사업이 이 땅 위에 성취된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한 인류 구원과 영원한 생명이란 아름다운 결실을 맺는데, 예언자들이 흘린 피는 소중한 밑거름이 된 것입니다. 한 존재가 죽어도 죽지 않는다는 것, 소멸되어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얼마나 대단한 일입니까? 그런데 그 일이 이제 우리에게도 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을 세례자 요한의 삶과 죽음은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처럼 자신 안에 생명의 불꽃을 간직한 사람들은 죽어도 죽지 않습니다. 비록 육체는 이 세상에서 자취가 사라지지만 영혼은 더 생생하게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