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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 남북통일 기원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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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4-06-24 조회수223 추천수7 반대(0)

60이 넘으면서 꼭 지켜야 할 삶의 태도 5가지에 대한 강의를 들었습니다. 저도 어느덧 60이 넘어서인지 관심이 있었습니다. 강의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젊어서는 식탁에 꽃병이 있는데, 나이가 들면서 식탁에 약병이 놓인다고 합니다. 어쩌면 인생은 꽃병과 약병 사이에 있는 것은 아닐까요? ‘점잖다.’라는 말은 젊지 않다는 말이라고 합니다. 나이가 들면 그만큼 말에 품격과 품위가 있다는 뜻입니다. ‘늙은이라는 말은 늘 그렇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나이가 들면 쉽게 변하지 않고, 나이가 들면 포용한다는 뜻입니다. 점잖게 늙어가는, 늘 그렇게 변함없는 노년이 되면 좋겠습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5가지를 잘 지켜야 합니다. 첫째는 타인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사는 겁니다. 남의 눈치를 보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기보다는 무엇이 나의 인생에 도움이 되는지, 무엇이 하느님의 뜻에 합당한지를 생각하면서 사는 겁니다. 소신껏, 자신의 주장을 이야기하고, 원하는 것을 성취하는 삶은 노년의 시간을 기쁘게 합니다. 저는 신학생으로 지내면서, 사제로 살면서 소신껏 지내기보다는 아무래도 눈치를 보았습니다.

 

둘째는 여행을 자주 다니는 겁니다. 60년대에 태어난 저는 해외여행을 많이 하지 못하는 시대를 살았습니다. 가능하면 가족이 함께 여행을 다니면 좋습니다. 여행은 삶에 활력을 주고, 여행은 새로운 견문을 넓혀주고, 여행은 인생을 풍요롭게 합니다. 바쁘다는 이유로,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경제적인 이유로 참다 보면 여행의 기회를 놓치고 맙니다. 그렇습니다. 여행은 가슴이 떨릴 때 가야지, 몸이 떨릴 때 가면 어렵습니다. 여행의 목록을 정해놓고 떠나는 삶은 노년의 시간을 기쁘게 합니다. 다행히 저는 성지순례를 다닐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셋째는 힘들고 어려울 때 터놓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어야 합니다. 기쁨과 즐거움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어야 합니다. 33년 사제로 지내면서 동창 신부님들은 제게 큰 위로와 기쁨이 됩니다. 매달 서울에서 동창 신부님들이 만나는데 함께 하지 못하는 것이 큰 아쉬움입니다. 뉴욕에서 팬데믹을 잘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동료 사제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곳 댈러스에서도 서울 교구 신부님이 있어서 다행입니다. 이 세상 떠나는 날 그 한 사람이 있어서 마음이 놓인다면 좋겠습니다.

 

넷째는 자기 계발입니다. 자전거는 페달을 밟아야 움직입니다. 페달을 멈추면 자전거는 쓰러지기 마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달란트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재능을 이웃을 위해, 나 자신을 위해 사용하면 좋습니다. ‘난 할 수 없어!’라는 말을 하기 보다는 나도 할 수 있어라는 말을 하면 좋습니다. 본당에는 성경 공부하는 모임이 있습니다. 부채춤을 배우는 모임이 있습니다. 사물놀이를 배우는 모임도 있습니다. 저도 팬데믹 때 배웠던 피아노를 다시 시작하려고 합니다. 인생은 많이 소유한 것으로 존경 받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은 자신의 능력을 계발하고, 이웃과 나눌 때 존경 받는 것입니다. 다섯째는 건강관리입니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고 합니다. 아무리 재물이 많아도 건강을 잃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스트레스는 면역력을 떨어트린다고 합니다. 늘 감사하며, 언제나 기뻐하고, 항상 기도하는 사람은 면역력이 강해집니다. 욕심을 버리고, 자신을 낮추면 건강해 집니다. 이해 받기보다 이해하는 사람이 건강해집니다. 적당한 운동과 규칙적인 식사는 건강에 큰 도움이 됩니다. 아름다운 노년을 위해서 이 다섯 가지를 실천하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입니다. 민족의 일치와 화해를 위한 방법도 있습니다. 오늘 성서 말씀은 우리가 어떻게 하면 민족의 일치와 화해를 이룰 수 있는지 알려주고 있습니다. 먼저 화해하고, 용서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잘못을 너그럽게 품어주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이론이라도 결실을 맺기 어렵다고 이야기 합니다. 인간의 관계는 꼭 시비를 가려야만 해결되는 것이 아닐 때가 있습니다. 남과 북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시비를 가리려고 하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해결을 하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엉킨 실타래는 더욱 심하게 꼬이게 됩니다. 불가에서는 이렇게 말을 합니다. "원망을 원망으로 갚으면 원망은 해결되지 않는다. 오직 참음으로써 원망은 해결되나니 이 가르침은 영원한 진리이다. 시비(是非)란 본시 그른 것만 취한다면 해결되지 않으며, 옳고 그른 것을 동시에 놓아버려야 끝이 난다. 宗敎란 으뜸가는 가르침이라는 한자라고 합니다. Religion은 엉킨 실타래를 푸는 의미가 있는 영어라고 합니다. 으뜸가는 가르침으로 세상사의 엉킨 실타래를 푸는 것이 종교라면 그리하여 해탈의 경지에 이르고, 그리하여 참된 구원의 문에 도달하려면 꼭 是非를 가려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셨듯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普施容恕 그리고 사랑이만이 냉각된 남과 북의 문제를 풀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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