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산 자가 가야 할 그 길만 보면서 / 연중 제13주간 월요일(마태 8,18-2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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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 작성일2024-06-30 | 조회수59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산 자가 가야 할 그 길만 보면서 / 연중 제13주간 월요일(마태 8,18-22) 주님 안에서 허락된 자유인은 세속적, 물질적인 온갖 것에 결코 매이지 않고 썩어갈 것들에 목숨 걸지 않는다. 그러기에 이기적 생각으로 자신마저 질식하는 이는 참된 자유인이 아닐 게다. 신앙인은 질식할지라도 그분이 첫째다. ‘예수님 제자들 가운데 어떤 이가, “주님,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 장사를 지내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따라라.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너는 그냥 버려두어라.”‘
어차피 장사를 지내야 하는 죽은 이들은 바로 하느님 나라의 길을 올바르게 찾지 못한 이들일 게다. 믿는 이들은 그 어떤 미련도 없이, 오직 그분만을 바라보아야만 한다. 예수님께서는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의 것이라고 치부한다. 우리 생각으로는 너무 모질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는 예수님을 올바로 따를 수 있으랴. 그것은 따를 수 없는 것이리라. 자연에 생기 넘치는 계절이지만 낮 시간을 정신없이 지내면서 위안을 찾는 밤이 돌아오면, ‘산다는 것이 무겁고 허전한 마음을 끌고 가는 것이구나!’ 라는 씁쓸함이 가끔은 뇌리를 스친다. 정성을 기울였던 일에서 보람을 느끼지 못할뿐더러, 의지할 만한 이들과의 관계가 어느새 짐이 되고 진부해지는 경험이 반복되면서 마음은 서서히 지쳐진다. 아무리 그분만을 바라보는 이라도, 차라리 세상사 다 잊고서, 정녕 자유로우면 좋겠다는 부질없는 생각마저 가끔은 든다. 이처럼 비록 신앙인의 삶일지라도 때로는 허무하고 쓸쓸할 때는, 누군가가 인생이 우주의 위대함과 자연의 순리에 비해 그리 대단한 게 아니라는 것을 깨우치는 고전 몇 줄이라도 읽으란다. 그러나 본디 사는 게 다 그렇고 그러려니 하고 생각하면, 지내기 쉬울 것 같기도 하단다. 아닌 게 아니라 버림은 부산하게 닥칠 일, 바쁜 마음에서 지친 마음을 쉬는 위로가 된다. 그래서 마음 깊은 곳에서나마 ‘세상 사랑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소리가 심장이 뛰듯 들린다. 예수님께서는 대충 쉽게 가르치심으로써, 되도록 많은 이들을 제자로 만들려 하지 않으시고 모든 것을 버리고 철저히 하느님께 의탁하는 이들만 참 제자로 받아들이신다. 사실 우리는 너무 쉽게 그분을 따르려 덤벼든다. 부모님의 장사도 자식에게는 어쩌면 아주 중요하지만, 그나마 예수님 따르는 건 죽기 살기의 결단이 요구된다. 장애가 되는 건, 과감히 물리쳐야 하리라. 좌우간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전히 자유로운 몸이 되었다. 자유인은 자신의 모든 삶을 이끌어 갈 바른 기준을 스스로 가진다. 그런 신념이 없으면 늘 핑계나 구실로 자신 합리화에만 급급할 테니까. 그러니 믿음의 삶을 살려면 자신만의 마음을 정말 독하게 가져야한다. 믿고 안 믿고는 자유다. 이 세상에 공짜가 없듯이 저 세상 길도 물론 공짜는 없다. 믿는 우리는 영원한 생명의 길을 따라 그분만을 보면서, ‘산 자가 가야 할 그 길’만을 보면서 가야 하리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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