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눈으로 우리의 성화는 주로 신앙에 기인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신앙은 온갖 의로움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물 안에서 하느님을 보고 신앙을 지니도록 합시다. 우리는 주님이 우리에게 계시하신 모든 진리를 하느님 안에서 보아야 합니다. 다른 모든 진리에 앞서 고찰되어야 할 것은 우리가 하느님으로부터 나왔고 하느님에게로 돌아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왜 살고 있는가? 하는 물음에의 대답은 하느님이 나를 시험하시기 위하여 이 지상에서 남겨 두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 시련을 잘 참아받아 성공하고, 다른 사람은 잘 참아받지 못하여 실패하고 맙니다. 이 시련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믿음과 사랑과 충실입니다. 믿음의 시련은 하느님의 사랑을 믿음으로써 극복할 수 있습니다. 사랑의 시련은 하느님을 사랑함으로써, 충실의 시련은 그의 말씀을 충실히 따라 계명을 지키고 복음적 권고를 계속 실천함으로써 극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련을 극복하고 나면 하느님 나라는 우리의 것이 됩니다. 주님은 우리가 지상에 머무는 동안 흥망성쇠를 거듭거듭 체험하기를 바라십니다. 어떤 사람은 기쁨에 가득 차 있고 어떤 사람은 슬픔에 잠겨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각기 다른 삶의 길을 걸어 하느님께로 나아갑니다. 하느님께서 어떤 사람에게는 더 많은 은총을 주시는가 하면 다른 사람에게는 조금 덜 주십니다. 우리는 여러가지 정욕에 지배되고 지위를 찾고자 합니다만, 그 모든 것들은 우리의 영원한 구원에로 방향 지어져야 합니다. 우리는 변하기 쉬운 인간입니다. 어떤 때는 행복하다고 생각하지만 또 어떤 때는 슬픔에 잠겨버립니다. 어떤 날은 평화롭고, 또 어떤 날은 유혹을 당합니다. 어떤 날은 건강하지만 어떤 날은 앓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들을 모두 하느님의 섭리로 알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부자가 있는가 하면 가난한 사람이 있고, 교양을 많이 쌓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문맹인도 있습니다. 높이 평가되는가 하면 무시 당하는 사람, 오해받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성인이 되도록 하느님께서 지혜로써 배려하신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호감을 갖게 되는 것도 반감을 느끼는 것도 오로지 하나의 목적, 즉 우리를 하느님 나라에 이르게 하려는 목적으로 모든 것을 허락하십니다. 그러므로 판단하고 비난하고, 많은 것을 바라느라고 시간을 낭비하지 않도록 합시다. 자신을 하느님과 그분의 뜻에 맡깁시다. 가치가 있는 것은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것, 이를 사랑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이에게 가능한 것입니다. 일어나는 모든 사건을, 가령 그 사건이 우리를 몹시 무겁게 덮쳐 누르는 듯할 때에도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것으로 알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모든 것은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서로 작용해서 좋은 결과를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로마 8,28)고 하는 것은 얼마나 타당한 이야기입니까? 때로는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 우리에게서 멀리 사라지고, 자기가 바라는 지위가 주어지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어떤 때는 유혹으로 마음이 산란해지고 육체적 고통으로 번민하게 됩니다. 계절의 변화마저도 우리에게 불편을 느끼게 하는 수가 있습니다. 어떤 방에 의자 하나를 옮겨 놓는 것 조차도 자신의 신경을 건드릴 때가 있습니다. 식탁에 놓인 음식이 맛이 없을 때도 있고, 자기와는 잘 맞지 않는 사람과 같이 일을 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하고 있든간에 하느님의 손길과 그분의 뜻을 보고자 하는 노력을 잊지 않도록 합시다. 우리는 어떤 학업을 계속하라는 권고를 받을는지도 모릅니다. 이것은 하느님 섭리의 일면에 불과합니다. 만일 우리 생애가 곤란과 실패의 연속으로 끝난다 해도 이 또한 하느님 계획의 표출일 것 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는 우리 유익을 위해 모든 것을 사랑과 지혜로써 보살펴주신다는 굳은 신앙을 갖도록 합시다.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하시려고 천지창조 이전에 이미 우리를 뽑아주시고 당신의 사랑 으로 우리를 거룩하고 흠없는 자가 되게 하셔서 당신 앞에 설 수 있게 하셨습니다" (에페 1,4)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원하시는 것은 여러분이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1데살 4,3) 우리는 하느님의 사람이 되기 위하여 수도자가 되었습니다. 하느님이 우리를 성화시키고자 허락하시는 여러 가지 사건을 주시는 대로 받아들입시다. 하느님은 우리를 가장 보람되이 살게 하시려고 어느 지정된 장소에 옮겨 심으셨습니다. 그분의 뜻에 우리 자신을 내어 맡깁시다. 이러한 삶은 분명 우리 성화에 큰 진보를 가져올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평온한 마음으로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하느님을 통하여 사물을 바라보도록 합시다. 하느님의 뜻은 어떠한 것이든 즉 우리가 좋아하는 것이든, 싫어하는 것이든 이행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의 삶에 시련이 없다면 어떻게 하늘에 보화를 쌓을 수 있겠습니까? 어려운 상황에 처해 살면서도 이를 하느님의 뜻으로 기쁘게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더 거룩해지고 더 많은 보화를 하늘에 쌓게 될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잘 이용합니다. 그는 생활의 변화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만족하든 않든 믿음은 우리에게 "모든 것은 하느님이 허락하시는 것이다. 좋든 싫든 관계없이 이를 받아들이자" 라고 대답하게 합니다. 지금부터 신앙의 둘째면인 기도에 대하여 고찰해 봅시다. 기도에 필요한 조건이 세 가지 있으니 그것은 신앙, 겸손, 인내 입니다. 여기서는 신앙이라는 말을 신뢰하라는 뜻으로 이해합시다. 하느님은 전능하시고 선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충만한 은총으로 가득 채워주시며 선물까지 주신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언제나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릅시다. 하느님을, 잘못하면 벌을 주려고 감시하는 심판자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그분은 우리가 성인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우리 약점을 다 알고, 보고 계시면서도 아버지로서 우리를 돌보십니다. 우리보다 무한히 슬기로우시고 우리를 극진히 사랑하시는 하느님은 때때로 우리의 생각과는 다르게 안배하실 것입니다. 성화 은총과 성소에 응답할 수 있는 은혜를 구합시다. 그러면 하느님께서 당신의 원의, 자비, 지혜에 따라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여 주실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 이상으로 우리를 알고 계시며, 우리가 자신을 사랑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를 사랑 하십니다. 때문에 우리의 선하신 아버지께 기도할 때, "저는 이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당신 뜻 대로 제 기도에 응답하여 주십시오" 하고 말씀드립시다. 하느님이 좋으실 대로 하시도록. 성화은총은 서서히 성장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성화은총을 구한다 해도 그 다음날 이 은혜를 받는다거나 갑자기 신앙, 희망, 사랑, 현명, 정의, 용기, 절제, 겸손, 정결의 덕이 우리 안에 더해진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도 "몸과 지혜가 날로 자라면서 하느님과 사람의 총애를 더욱 많이 받았다" (루가 2,52)고 하였습니다. 우리도 매일 지혜, 나이, 은혜에 있어 성장해야 합니다. 하느님이신 예수님 자신이 인간으로서 매일 조금씩 진보하셨다면 우리가 하루 사이에 온전히 변하여 거룩해지기를 바라서는 안됩니다. 오늘은 오늘의 은혜를 받아 오늘을 성화시키도록 노력하고 기도합시다. 내일은 내일을 위하여 필요한 은혜를 간구합시다. 오늘은 생명을 유지하고 자기 의무를 이행하기 위한 힘을 얻기 위하여 먹고,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는 게 좋을 것입니다. 끊임없이, 그리고 변함없이 전진하는 삶이야말로 성인이 되는 참삶입니다. 우리는 언제고 조금씩 그러나 확실히 진보해야합니다. 집을 세우기 위하여 일꾼은 벽돌 하나를 다른 벽돌위에 쌓아갑니다. 우리의 성화도 그래야 합니다. 매일 쌓아 가야 합니다. 꾸준히 기도하면 반드시 받게 된다는 확신을 가지고 무한한 신뢰로써 자신의 영적 필요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기도하는 자는 구원되고, 많이 기도한 자는 성인이 된다는 말을 믿읍시다. 우리는 신앙을 두 가지 관점에서 고찰하여 왔습니다. 하나는 모든 것을 하느님 안에서 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단순한 마음과 신뢰로써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신뢰하는 분은 선하신 아버지이십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온전히 신뢰하며 우리의 바람 하나를 말씀드립시다. (알베리오네 신부의 영적 가르침) 「믿음 희망 사랑」에서 G. -알베리오네 著 / 표동자 譯 성바로로 刊-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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