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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바람과 희망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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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백봉7 쪽지 캡슐 작성일2024-07-07 조회수130 추천수3 반대(0) 신고

 

 

 

 

 

 

2024년 나해 연중 제14주간 월요일

 

 

 

<바람과 희망의 차이>

 

 

 

복음: 마태오 9,18-26

 






하느님의 아들이며 말씀이신 그리스도

(1540-1550), 모스크바 크레믈린 Cathedral of the Sleeper

 

 

 

 

 

    오늘 복음에서 회당장은 엄청난 믿음을 보여줍니다. 

    “제 딸이 방금 죽었습니다. 그러나 가셔서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면 살아날 것입니다.”

이는 믿음은 하느님 능력을 말해줍니다. “당신은 손만 대면 죽은 이도 살리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또 혈루증을 앓는 여자는 예수님의 옷자락 술에 손을 대며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

이는 하느님 능력은 물론이요, 자비에 대한 믿음입니다. 하느님은 능력자시요 자비로우신 분으로 여기게 되면 우리 마음에 생기는 것이 ‘희망’입니다. 

믿음과 희망은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생긴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믿음과 희망이 우리를 주님께로 이끕니다. 주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분의 능력을 믿고 그분의 자비를 희망해야 합니다. 

 

 

    그런데 자칫 우리는 희망과 바람을 착각합니다. 희망은 믿음이고 바람은 인간적인 욕구입니다. 바람으로 구원되지는 못하지만, 희망으로는 구원에 이릅니다. 

    비디오 아티스트인 김형규 씨가 담배꽁초 20만 개로 실물 크기의 자동차를 만들어 금연 캠페인을 하였습니다. 담배꽁초 수집에만 2달, 분류하는 것만 2주가 걸려 거의 3달에 걸친 작업이었습니다. 작업이 끝나자 두드러기가 나서 병원에 가보니 면역체계가 무너졌다는 소견을 들었습니다. 함께 작업한 30명 대동소이한 반응이었습니다. 그 중의 흡연자가 15명이었는데 모두 금연을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한 달 뒤 15명 모두 다시 담배를 다시 피우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희망한 것일까요, 아니면 원했던 것일까요? 인간적인 바람으로는 얻어지는 게 없습니다. 희망은 믿음과 함께하기에 반드시 방법을 찾아내고 끝까지 멈추지 않습니다. 

    제가 유학을 다녀와서 피부 알레르기 때문에 여러 병원에 다녔습니다. 그러나 해결책을 주지 않았습니다. 결국 레이저로 붉게 된 얼굴을 지졌습니다. 그래도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한약도 먹어 보았습니다. 여전히 낫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원인이 있을 것이고 그것을 찾으면 나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한 번은 계면 활성제에 대한 일부 의사의 소견을 들었습니다. 그것이 피부 속으로 스며들 수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거의 10년째 비누를 쓰지 않습니다. 그때 시도해 보았더니 효과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희망은 믿음과 하나입니다. ‘죽은 아이에게 예수님께서 손을 얹으면, 그분의 옷자락에 손을 대기만 하면 나을 거야!’란 생각 안에 ‘방법’과 멈추지 않게 하는 믿음이 들어있습니다. 

 

 

    성녀 요셉피나 바키타는 어렸을 때 납치되어 매일 매를 안 맞는 날이 없는 노예 생활하였습니다. 어린 나이에 쇠사슬에 묶여 900킬로를 걸어서 끌려간다고 생각해보십시오. 매일 때리고 그 상처에 소금을 끼얹는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러나 아이는 자연을 만드신 분을 찾고 싶었고 자유로운 인간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탈리아 사람이 주인이 되었을 때 그에게 매달려 이탈리아로 넘어옵니다. 거기에서 하느님이 계신다는 것을 알게 되고 다시 수단으로 보내지려 할 때 그녀는 이탈리아 법정에까지 나아가 그들과 싸우며 자유를 쟁취하였습니다. 그리고 수녀원에 들어가 겸손하고 온화하고 위로하는 수녀님으로 47년을 삽니다. 그녀는 자기 삶에 관해 쓴 책으로 많은 이들을 위로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희망하는 삶입니다. 희망하는 삶이 반드시 열매를 맺는 이유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의지를 선물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연옥의 한순간의 고통은 지상의 모든 고통을 합친 것보다 더 무섭다고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연옥에 가지 않기를 원해야 합니다. 원하는 사람은 구체적인 방법을 찾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희망하는 사람은 찾습니다. 연옥에 안 가게 하는 유일한 기도가 있습니다. 비르짓다의 ‘일곱 번의 주님의 기도’입니다. 사실 이것을 바치지 않는다면 원하기는 하지만, 희망하지는 않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방법을 찾고 꾸준할 수 있어야 기적의 열매가 맺힙니다. 이것이 희망이 단순한 바람과 다른 점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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