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이영근 신부님_“아이에게 손을 얹어주시면 살아날 것입니다.”(마태 9,1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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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 작성일2024-07-08 | 조회수84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 오늘의 말씀(7/8일) : 연중 제 14 주간 월요일 * 제1독서 : 호세 2, 16. 17ㄷ-18. 21-22 * 복음 : 마태 9, 18-26
1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말씀을 하고 계실 때, 한 회당장이 와서 예수님께 엎드려 절하며, “제 딸이 방금 죽었습니다. 그러나 가셔서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면 살아날 것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19 예수님께서는 일어나시어 제자들과 함께 그를 따라가셨다. 20 그때에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는 여자가 예수님 뒤로 다가가, 그분의 옷자락 술에 손을 대었다. 21 그는 속으로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 하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22 예수님께서 돌아서시어 그 여자를 보시며 이르셨다. “딸아, 용기를 내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바로 그때에 그 부인은 구원을 받았다. 23 예수님께서 회당장의 집에 이르시어 피리를 부는 이들과 소란을 피우는 군중을 보시고, 24 “물러들 가거라. 저 소녀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예수님을 비웃었다. 25 군중이 쫓겨난 뒤에 예수님께서 안으로 들어가시어 소녀의 손을 잡으셨다. 그러자 소녀가 일어났다. 26 그 소문이 그 지방에 두루 퍼졌다. * 오늘의 강론 : “네 믿음이 너를 낫게 하였다.”(마태 9,22) 오늘 <복음>은 두 개의 기적 이야기가 극적인 긴박감을 이루고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께서 열두 해 동안 하혈병을 앓던 여인을 치유하시는 장면이요, <또 하나>는 회당장의 죽은 딸을 살리시는 장면입니다.
이 두 이야기에는 서로 공통점이 있습니다. 곧 두 이야기 모두 이미 절망하고 포기되었어야 할 상태에서 믿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열두 해 동안 하혈병을 앓고 있던 여인”은 이 불결한 병 때문에 이미 삶이 포기될 수밖에 없는 상태이지만,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면 구원을 받겠지.”(9,20)라고 믿었습니다. “회당장” 역시 딸이 죽어 이미 생명이 끝나버린 상태이지만, “아이에게 손을 얹어주시면 살아날 것이다.”(9,18)라고 믿었습니다. 또한, 둘 다 “손”이라는 도구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하혈병을 앓던 여인”은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면 구원을 받으리라고 생각하였고, 그래서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었고, 마침내 병이 나았습니다. “회당장” 역시 아이에게 “손”을 얹어주시면 살아날 것이라고 간청하였고, 예수님이 아이의 “손”을 잡으시자 그 아이는 곧 일어났습니다.
한편, 이 두 이야기에는 서로 다른 점도 있습니다. 곧 회당장의 죽은 딸에게 있어서는 ‘예수님’께서 소녀의 ‘손’을 잡으시자 그 아이가 일어났다는 사실이요, 하혈병을 앓던 여인에게 있어서는 ‘하혈병을 앓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었다는 사실입니다. 곧 앞의 이야기에서는 ‘예수님의 손’이 죽음을 생명으로 이끄는 권능의 도구라면, 뒤의 이야기에서는 ‘하혈병을 앓던 여인의 손’이 예수님의 치유의 권능을 끌어들인 도구라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앞의 이야기에서는 회당장의 믿음을 보시고 예수님께서 당신의 권능으로 죽은 소녀를 살리신 반면에, 뒤의 이야기에서는 하혈병을 앓던 여인이 자신의 믿음으로 예수님의 치유의 권능을 불러들였습니다. 그래서 이 뒷이야기에만 “네 믿음이 너를 낫게 하였다.”(9,22)라는 말씀이 덧붙여졌습니다.
이 두 이야기는 우리에게 ‘믿음’에 대해 깨우쳐줍니다. 사실 ‘하혈병을 앓던 여인의 믿음’은 언뜻 보기에는 미신적이기까지 한 것으로 보여 집니다. ‘옷에 손을 대기만 하면 구원을 받으리라는 믿음’, 그것은 어찌 보면 주술적이거나 마술적이기까지 합니다. 또한 ‘회당장의 믿음’ 역시 언뜻 보기에는 억지라고까지 할 수 있는 것으로 보여 집니다. ‘이미 죽은 아이에게 손을 얹어주면 다시 살아나리라는 믿음’, 그것은 어찌 보면 참으로 어리석고 바보짓이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믿음’은 단순히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거나, 예수님이 손을 얹어주는 것에 대한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믿음은 단순히 상황이 바뀌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아니라, 그렇게 상황을 바꾸실 수 있는 분에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그렇게 하실 수 있는 그분과 그분께서 그렇게 해주시리라는 믿음이었습니다.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요, ‘예수님의 권능에 대한 믿음’과 ‘자비에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곧 예수님께서는 생명을 관장하시는 분이시며, 부정을 깨끗이 하실 수 있는 분이시며, 그렇게 해주시는 그분의 사랑에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두 이야기는 예수님의 신성과 메시아, 곧 예수님께서 구세주이시고 하느님이심을 드러내줍니다. 그러기에, 그 어떤 상황에서도 절망에 빠지는 일이 없이, ‘끝까지 믿어라’는 말씀입니다. 오로지 예수님께만 희망을 두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전부입니다. 그러기에 생명으로 이끄시는 그분의 전능한 손길에 우리의 손을 맡겨드려야 할 일입니다. 또한 우리는 믿음의 손으로 그분의 옷을 부여잡고 그분의 권능과 자비가 우리들 안에 흘러들도록 해야 할 일입니다. 아멘.
“아이에게 손을 얹어주시면 살아날 것입니다.”(마태 9,18)
주님! 당신께서는 저를 빚어 만드시고, 당신의 지문을 새기셨습니다. 선악과를 붙잡았던 제 손을 대신하여, 당신 손을 십자가에 못 박으셨습니다. 그 손을 얹으시어, 저를 축복하소서! 제 안에 새긴 당신 얼을 새롭게 하소서! 제 온몸에 사랑의 전류가 흐르게 하고, 제 손을 잡는 이마다 사랑의 전등이 켜지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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