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추수할 일꾼의 역할은 행복 전도사 / 연중 제14주간 화요일(마태 9,32-3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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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 작성일2024-07-08 | 조회수73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추수할 일꾼의 역할은 행복 전도사 / 연중 제14주간 화요일(마태 9,32-38)
최근 들어 신앙생활을 멀리하는 교우가 많아졌단다. 신앙이 짐스럽고 또 귀찮게 느껴지기에.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때로는 있을 게다. ‘저 이는 진짜 기쁘게 신앙생활을 하는구나. 저 가정에는 정말 하느님의 보호가 있구나.’라는 느낌을 주는 게 많아져야 한다. 그들이 진정한 이 시대의 ‘주님의 일꾼’이니까. 누가 뭐래도 믿음의 본질은 기쁨이다. 우리는 참 행복을 얻으려 주님께로 나아간다. 그런데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전혀 기쁨을 체험하지 못한다면 그건 문제이다. 사실 신앙이란 하느님을 무엇보다 밝고 기쁜 마음으로 찾고 가까이하는 거다. 그렇게 그분은 삶의 행복을 알리시려고 우리를 가까이 부르셨다. 그러므로 그분 은총에서 보람 찾는 신앙인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늘 힘 있는 선교도 일상에서의 삶에서 기꺼이 기쁨을 찾을 수 있을 게다. 보면서도 믿으려하지 않기에, 하느님과 이웃과도 소통할 줄 모르는 기쁨을 잃은 이들이다. 예수님께서 기가 꺾여 있는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단다. 가엾은 마음은 상대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여기며 공감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상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출발점이다. 그분께서는 우리와 소통하시고 공감하시려고 오셨다. 그리고 더 많은 이에게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려고, 우리 모두에게 ‘추수할 일꾼’이 되라신다. 정말 일할 곳은 많은데 추수할 이가 부족하다는 예수님의 아쉬움을 듣는다. 그 일꾼은 그분 사랑을 널리 알려야 할 게다. 어쩜 두 가지 상반된 시각 중 올바른 것을 가려내는 건 참으로 어려울 게다. 예수님께서 말 못하는 이의 마귀를 쫓아내시자, 그가 말을 하였다. 말문이 터져 이제는 생각과 느낌을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단다. 이건 분명 기적이었고 사실이었다. 그러나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이 일에 경탄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이를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린 일이라고 모함하는 이들도 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고쳐 주신다. 그러면서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음을 보신다. 마치 야뽁 건널목을 건너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하던 야곱의 모습으로 비쳐진다. 이런 비참한 모습을 보시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들을 격려하고 보살필 일꾼들을 보내 달라 청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렇지만 그게 쉬운 것 같지만 결코 간단치 않으리라. 일생 단 한명만이라도 주님께 인도해도 대단한 일이다. 사실 예수님은 우리가 기쁘게 살기를 바라신다. 현세에서 기쁘게 살지 못하면 죽어서도 하늘나라의 기쁨을 누리기 힘들 것이란다. 기쁘게 살면서 다른 이도 그렇게 살게 하는 게 정녕 주님 일꾼의 역할이다. 그렇지만 방해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가끔 신심 깊은 이가 엉뚱하게 휘말려 교회를 멀리하는 것도 그런 이유이다. 예수님시대의 지도자들은 율법으로 그 백성을 묶으려 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런 율법만이 믿음의 족쇄가 아니라신다. 우리는 강요가 아닌 자유 의지로 그분의 참 일꾼이 되었다. 우리들 삶에서의 기쁨으로 행복 나누는 이가 되자.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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