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그분 가신 그 길 걸으면서 / 연중 제14주간 금요일(마태 10,16-2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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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 작성일2024-07-11 | 조회수73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그분 가신 그 길 걸으면서 / 연중 제14주간 금요일(마태 10,16-23)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마음은 어떨까? 부모가 자식을 군대에, 더구나 외국어도 잘 못하는 자식을 유학 보내는 부모님 그 마음은? 장차 맞닥뜨려야 할 변화가 거대한 장벽으로 밀려올게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앞으로 그들에게 닥칠 고난을 미리 알려 주신다. 그 난관은 군대에서나 외국에서 체험할 수 있는 그런 정도의 험난함 정도가 아니리라. 정의와 평화를 위해 회당에서 채찍질당하고 총독들 앞에서 증언해야 할 뿐 아니라, 부모 자식 형제간에 서로 싸우고 투쟁해야만 하는 그런 것이리라. 그렇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보내시면서 그 어떤 박해에도 무엇을 말할지 아예 걱정일랑 하지를 말라신다. 사실 스승님 말씀이 그렇다하여도, 그들은 걱정에서 전혀 자유로울 수 없을 게다. 그럼에도 걱정을 놓으라신다. 두려워하지도 말라신다. 다만 당신께 철저하게 맡기라신다. 그래서 참으로 우리는 슬기로워야 할 게다. 사실 저 못된 박해자들이 박해하는 것은 우리가 아니다. 세상이 박해하고 그렇게 거부하는 것은 오직 주님이다. 우리는 단지 그분의 일꾼일 따름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박해하는 저들 앞에서 결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주님께서 언제어디서나 우리와 함께하실 것이기에. 미리 대비한다고, 그 두려움이 작아지거나 없어지는 게 아니라나. 주님 보호를 느껴야 두려움은 사라질 게다. 걱정도 습관이다. 그게 굳어지면, 작은 게 어느새 큰 것으로 바뀌리라. 팔자소관일 게다. 분명한 가치관을 가지고 인생을 사는 이와 그러지 못한 이는 크게 다르다. 자기 안에 가치관이 정립된 이는 어떤 문제에 부딪혔을 때 자신의 입장을 정리 어떻게 할지를 쉽게 선택한다. 그러나 그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은 이는 감정에 따라 반응하기에 늘 환경에 끌려만 다닌다. 신앙인은 주로 주도적인 이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가치를 중심에 두고 사는 이들이기에. 곧 자신에게 닥친 것을 주위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대응하실까?’를 물으며, ‘그분 방식’으로 줄곧 대응할 게다. 그것은 무엇을 말해야 할지는, 언제나 성령께서 일러 주시니까. 그래서 우리도 무슨 일이 닥칠 때 ‘주님, 당신께서는 이 문제를 제가 어떻게 하길 바라십니까?’라고 묻는 기도를 절실히 하면 참으로 도움이 될 게다. 평소에도 이런 훈련을 하고 성령께 귀 기울이는 연습을 하면, 신앙은 물론 세상만사에서 어쩜 주도적인 이가 되리라. 예수님을 의지하며 사는 이런 이가 어떤 일에서나 늘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기에.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셔서 세상과 맞서셨다. 교회가 맡은 임무와 사명이 크면 클수록 장벽 또한 그만큼 높고 험난할 게다. 그러기에 우리 신앙인은 세상이 던져 주는 저 달콤하고도 손쉬운 유혹을 이겨 내야만 한다. 그분께서 택하신 외롭고 고된 십자가의 길에서, 오로지 가장 작은이와 함께하는 사랑과 자비로 그 모든 수치스런 조롱과 모욕을 견뎌야만 한다. 그렇다고 포기하고 가만히 있으라는 건 결코 아니다. 예수님 제자로 증언하는 것이지, 세상살이에서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포기하는 것이리라. 신앙생활이 귀찮다는 이들이 느는 것 같다. 남들은 놀고 쉬는데 믿음에 발목이 잡혀 성당 가는 게 그리 쉽지 않단다. 그래도 우리 예수님은 ‘어떻게, 아니 무엇을 말할까?’라고 걱정을 말라신다. 당신 때문에 손해 보는 걸 결코 버려두지 않으신단다. 그러니 이 길이 어렵다고 생각지 말고, 차분히 그분 가신 그 길을 걸어가자.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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