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예수고난회 김준수 신부님의 연중 제15주간 목요일: 마태오 11, 28 - 30
이전글 [연중 제15주간 수요일]  
다음글 ■ 코끼리 사슬 증후군 / 따뜻한 하루[432]  
작성자이기승 쪽지 캡슐 작성일2024-07-17 조회수95 추천수2 반대(0) 신고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11,28)


인생이 고달프지 않거나 힘들지 않은 사람 어디 있을까요? 가난은 절대적이 아니고 상대적이듯이, 삶의 무게도 상대적이라고 봅니다. 편함에 길든 사람에게는 아주 작은 것마저 힘들고 무겁게 느껴지겠지요. 아무튼 예수님께서 사시던 당대의 유다 서민들의 삶은 참으로 고달프고 힘겨운 삶을 살았습니다. 삶이 힘든 것은 물론 미래에 대한 희망도 전혀 보이지 않을 만큼 힘겨운 상황이었습니다. 이렇게 힘든 삶의 여건에서, 율법마저 그들에게는 감내하기 어려운 무거운 짐이 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종교의 근본정신인 사랑과 자비가 사라지고 껍데기만 남은 율법은 분명 서민들에게는 힘겹고 무거운 짐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11,28)하며, 지치고 힘든 자들을 당신에게 오너라, 고 초대한 것입니다. 이와 반면 예수님께서는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들을 향해서는, “그들은 무겁고 힘겨운 짐을 묶어 다른 사람들 어깨에 올려놓고, 자기들은 그것을 나르는 일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고 하지 않는다.”(마태23,4)하고 책망하셨습니다. 물론 613조항에 달한 모세의 율법이 그들에게 아주 특별한 의미가 있고 그만한 이유가 있었겠지만, 평범한 서민들에게는 너무 벅차고 무거운 짐이 된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11,30)하고 말씀하신 것이고, 예수님께서는 모든 계율을 단 두 가지 곧 황금율(7,12)과 사랑의 이중계명(22,34~40)으로 환원시키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삶에는 어쩔 수 없이 고생이 따르기 마련이지만, 유다 서민들에게는 힘든 삶에다 율법으로 인한 무거운 짐까지 짊어져야 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었기에 예수님의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다 내게로 오너라!”는 말씀은 당대의 사람들에게나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큰 위로가 되고 위안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멍에를 풀어 주겠다’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내 멍에를 메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당신이 지어주는 멍에가 편하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멍에라는 단어를 십자가라는 말로 바꾸더라도 의미는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태16,24) 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내 삶의 멍에나 십자가를 거부하고 부정할 때 삶의 멍에나 십자가의 무게는 더 큰 부담으로 우리를 불편하게 하고 불행하게 만들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 멍에를, 십자가를 기꺼이 짊어지고 나아갈 때 홀로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게 아니라 모든 삶의 순간에 주님께서 함께 짊어지고 가시기에 편해질 것입니다. 피할 수 없는 삶의 멍에나 십자가를 혼자 짊어지고 가는 게 아니라 주님과 함께 나누어지기에 편함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나의 멍에, 내 십자가를 함께 짊어지시고 가시는 예수님의 보조에 순응해 가고 적응해 가면서 더 편안해지는 것을 느끼게 되고 내 멍에와 내 십자가를 받아들일 때 그 안에 편안하게 머무르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배우면 배울수록 온몸과 마음으로 안식을 느끼게 되고 그런 만큼 더 많은 자유를 누리는 삶을 살게 되리라 봅니다. 이것이 주님의 말씀이 품고 있는 역설입니다. 

    『한 남자가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그는 하느님과 나란히 걷고 있었다. 그때 그의 지나간 삶의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해변의 모래밭에는 두 개의 발자국이 나 있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하나의 발자국만 모래밭에 남아 있었다. 그의 삶에서 가장 힘들고 곤경에 처해 있을 때, 오직 그의 발자국만 남아 있었다. 외롭게 남아 있는 한 개의 발자국이 그를 실망시켰다. 그는 항의조로 하느님에게 물었다. ‘하느님! 어떻게 이러실 수 있습니까? 언제나 저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했으면서 정작 제가 당신을 가장 필요로 할 때는 저를 떠나셨다는 말입니까?’ 하느님께서 그에게 응답하셨다. ‘저 해변에 나 있는 발자국은 네 발자국이 아니라 내 발자국이다. 네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힘들어 했을 때, 내가 너를 업고 걸었기 때문이다.』 ( 메리 스티븐슨의 두 개의 발자국)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