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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수철 신부님_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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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4-07-21 조회수91 추천수3 반대(0) 신고

 

착한 목자 파스카 예수님 영성 살기

“정의, 평화, 연민”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오늘 7월21일 연중 제16주일 화답송 후렴 시편은 늘 들어도 위로와 힘이 됩니다. 말마디를 바꾸어 “주님은 나의 목자, 두려울 것 없어라”, “주님은 나의 목자, 불안할 것 없어라.”, “주님은 나의 목자, 걱정할 것 없어라.” 바꿔 불러도 전혀 손색이 없습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자 빛이신 주님을, 희망이자 기쁨이신 주님을 잊어 뿌리없이 표류하는 삶이요 어둠 속에 방황하는 혼란한 삶입니다. 참으로 우리 삶의 목표이자 방향이요, 우리 삶의 중심이자 의미이신 착한 목자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이런 착한목자 주님을 잊고 살기에 죄도 많고 병도 많은 세상이 되었습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김수환 추기경의 묘비명이기도 합니다. 아주 예전 어느 분이 돌아간 아내의 묘비명을 청하기에 주저없이 이 시편 성구를 추천한 적도 생각납니다. 이어지는 시편 가사도 마음에 평화와 위안을 줍니다.

 

“파아란 풀밭에 이몸 뉘어주시고,

 고이쉬라 물터로 나를 끌어 주시니,

 내 영혼 싱싱하게 생기 돋아라.”

 

참 감사하게도 착한 목자 주님은 우리를 생명의 잔치, 이 거룩한 미사잔치에 초대해 주셨습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나에게 오너라. 내가 안식을 주겠다.”(마태11,28)는 주님의 초대에 응답해 미사잔치 참석하고 있는 여러분은 행복합니다. 행복은 선택입니다. 생명의 미사잔치를 선택한 여러분은 참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오늘 연중 제16주일은 제29회 농민주일이기도 합니다. 한국천주교회는 1995년 추계정기총회의 결정에 따라, 해마다 7월 셋째 주일을 농민 주일로 지내고 있습니다. 농민주일을 맞이할 때 마다 생각나는 착한 목자 예수님의 요한복음 15장 1절, “나는 참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라는 참 멋진 고백입니다. 

 

어떤 직업보다도 농업에 종사하는 농부들은 하느님을 가장 닮은 분들임을 깨닫습니다. 농사의 80%는 하느님께 달렸다 고백하는 농부들을 보면 하느님을 닮은 수도승같다는 생각도 들곤 합니다. 오늘 농민주일을 맞이하여 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회 위원장인 박현동 아빠스의 담화문 내용 일부를 소개합니다.

 

“농민주일은 농민을 위한 날이자 농민들의 열정과 노력의 결과를 소비하는 도시 생활인을 위한 날이기도 합니다.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계를 회복하고 생태적 회개의 삶을 살아가며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세상을 만들어 나갑시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 마침 어제 수도원에 피정 온 청년들이 청했던 강의 제목입니다. 언제나 하느님께서 보시니 참 좋은 삶을 위해 평생 노력해야 함을 참 많이 강조했습니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참 좋은 삶’은 바로 우리 삶을 평가하는 잣대이기도 합니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참 좋은 삶의 영원한 모델이 바로 착한 목자 예수님이요, 오늘은 착한목자 영성에 대해 세 측면에 걸쳐 나눕니다.

 

첫째, 정의를 실천하는 삶입니다.

착한목자 예수님은 정의로운 분입니다. 구약에서 특히 강조된 정의와 공정입니다. 시편이 노래하는 하느님은 공정과 정의의 주님입니다. “주님께서는 정의를 실천하시고 억눌린 이들에게 공정을 베푸신다”(시편103,6), “그분은 정의와 공정을 사랑하시는 분, 주님의 자애가 땅에 가득하다”(시편33,5), “빛처럼 정의를 떠오르게 하시며, 대낮처럼 공정을 밝히신다”(시편37,6), “그가 당신의 백성을 정의로, 당신의 가련한 이들을 공정으로 통치하게 하소서”(시편72,2). “행복하여라. 공정을 지키는 이들, 언제나 정의를 실천하는 이들”(시편106,3), 끝없이 이어지는 강조되는 정의와 공정의 삶입니다. 

 

정의와 공정, 오늘 우리 사회를 비춰주는 거울같은 말마디입니다. 모든 문제의 원인은 정의와 공정이 무너짐에서 시작됨을 봅니다. 힘없는 백성이 하느님의 통치를 대신하는 지도자들에게 바라는바 정의와 공정이었고, 이는 만민이 지켜야 하는 도리요 실행해야 할 과제였습니다. 

 

현자들은 “정의와 공정을 실천함이 주님께는 제물보다 낫다”(잠언21,3)는 결론에 이르렀고, 이사야 예언자는 “그분께서는 공정을 바라셨는데 피흘림이 웬말이고, 정의를 바라셨는데 울부짖음이 웬말이냐?”(이사5.7) 탄식했습니다. 오늘 제1독서 예레미야 예언서 역시 일치합니다. 미래의 임금 메시아를 통해 공정과 정의가 실현되리라는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바로 오늘이 바로 그날이요 그분은 우리의 착한 목자 예수님입니다.

 

“보라, 그날이 온다! 내가 다윗을 위하여 의로운 싹을 돋아나게 하리라. 그 싹은 임금이 되어 다스리고 슬기롭게 일을 처리하며, 세상에 공정과 정의를 이루리라.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주님은 우리의 정의’라고 부르리라.” 바로 주님의 우리의 정의라고 명명되는 분이 바로 착한 목자 예수님임을 깨닫습니다. 새삼 이런 공정과 정의가 없는 사랑과 평화는 얼마나 공허하겠는지요! 애당초 불가능한 가짜 사랑, 가짜 평화입니다.

 

둘째, 평화를 실천하는 삶입니다.

“주님은 우리는 정의”에 이어 “주님은 우리의 평화”입니다. 정의와 평화는 한 세트입니다. 그래서 교구마다 ‘정의평화위원회’가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 해당되는 분이 우리의 착한 목자 그리스도 예수님입니다. 산상설교중 참행복에 관한 다음 말씀도 기억하실 것입니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랄 불릴 것이다.”(마태5,9)

 

전쟁과 평화입니다. 평화를 원하는데 역설적으로 계속되는 전쟁입니다. 평화를 이루기 위해 부단히 영적전쟁을 수행하는 우리 믿는 이들, 특히 수도자들은 주님의 전사, 평화의 전사라 부릅니다. 후대 예수님의 제자들은 착한목자 그리스도 예수님이 우리의 참 평화이심을 깊이 깨달았고 우리는 바오로의 고백을 통해 배웁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입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몸으로 유다인과 이민족을 하나로 만드셨고 이 둘을 가르는 장벽인 적개심을 허무셨습니다. 그렇게 하여 당신 안에서 두 인간을 하나의 새인간으로 창조하시어 평화를 이룩하시고, 십자가를 통하여 양쪽을 한 몸 안에서 하느님과 화해시키시어, 그 적개심을 당싱 안에서 없애셨습니다.”

 

바로 우리의 평화이신 주님은 우리 모두 착한 목자 주님을 닮은 평화와 화해, 일치의 새인간으로, 참으로 자유로운 새인간으로 창조하셨고,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새롭게 깨닫는 진리입니다.

 

셋째, 연민을 실천하는 삶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계시되는 착한 목자 예수님은 연민의 사랑을 지니신 분입니다. 불교용어로 대자대비하신 착한목자 예수님입니다. 힘겹게 복음 선포 활동을 하다 돌아와 보고를 받으신 주님은 지친 사도들에게 휴식을 명하십니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 음식을 먹을 겨를조차 없었던 것입니다.

 

“너희는 외딴곳에서 가서 좀 쉬어라.”

 

참으로 착한 목자 주님의 배려하는 연민의 사랑이 빛납니다. 쉬지 못하는 활동 중독의 활동주의도 병입니다. 지친 심신의 힐링의 치유와 충전을 위해 때로 외딴곳에서 쉼터에서의 휴식은 필수요 외딴곳에서의 이 거룩한 미사전례 보다 더 좋은 힐링은 없습니다. 

 

영육의 휴식의 쉼터가 되고, 주님의 생명수로 갈증을 해소하는 샘터가 되며, 주님의 진리 말씀을 배우는 배움터가 되는 미사전례보다 더 좋은 치유의 안식처는 없을 것입니다. 연민의 사랑은 분별의 잣대입니다. 외딴곳에 도착했을 때 기다린 것은 쉼터가 아니라 일터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먼저 와서 예수님 일행을 기다리고 있으니 참 반갑지 않은 손님들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분별의 지혜는 빛났습니다. 착한 목자 예수님의 면모가 약연하니 쉼이 아니라 가엾은 군중을 선택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 시작하셨다.”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심각한 상태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영원한 착한목자 예수님이 계십니다. 가엾이 여기는, 불쌍히 여기는, 측은히 여기는 마음이 바로 연민의 사랑이요 착한목자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목자없는 군중을 만나서 우선하신 일이 무지를 깨우치는 말씀 공부였음을 깨닫습니다. 이어지는 오천명을 먹이신 기적입니다. 미사의 말씀전례에 이은 성찬전례를 상징하는 장면입니다. 

 

무지를 깨우치는 진리 말씀 공부가 얼마나 본질적 중요성을 깨닫게 됩니다. 만악의, 만병의 근원이 탐욕, 교만, 질투, 분노, 어리석음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알아가는 말씀공부를 통해 비로소 치유되는 무지의 병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보시시에 참 좋은 삶을 원하십니까? 착한 목자 예수님의 영성을 배워 닮으십시오. 평생공부입니다. 정의를 실천하는 삶, 평화를 실천하는 삶, 연민을 실천하는 삶입니다. 착한 목자 주님을 닮는 지름길이요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결정적 도움을 주십니다. 

 

“보라, 하느님은 나를 도우시는 분,

 주님은 내 생명을 떠받치는 분이시다.”(시편54,6).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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