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반영억 신부님_「주님의 일을 하십시오」 | |||
---|---|---|---|---|
이전글 | ~ 연중 제 18주간 목요일 - 주님은 내겐 어떤 분? / 김찬선 신부님 ~ |1| | |||
다음글 | 오늘의 묵상 [08.08.목] 한상우 신부님 | |||
작성자최원석 | 작성일2024-08-08 | 조회수50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 하고 물으신 후 다시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하고 물었습니다. 이 말씀은 남들이 이러저러하게 생각하는 것을 말하지 말고, 네가 생각하는 것을 말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정체를 말하기보다 ‘너희에게 내가 어떤 존재이냐?’를 묻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16,16) 하고 고백하였습니다. 성 마더 데레사 수녀님은 자신을 ‘주님 손에 쥐인 몽당연필’이라고 말하였습니다. ‘당신은 누구이십니다.’라는 고백은 ‘저는 당신의 무엇입니다.’라는 고백과 같습니다. 과연 여러분은 주님의 무엇입니까?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는 자기를 ‘예수님의 데레사’라고 고백했고, 예수님께서도 나는 ‘데레사의 예수’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로 고백한 베드로가 꾸중을 듣습니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마태16,23).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수난과 죽음, 부활에 관해 가르쳐 주셨지만, 그에 대한 깨우침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꾸중을 들었습니다. 무엇이라고 입으로 고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삶으로 말하는 것이 더 필요합니다.
베드로에게 있어서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고 죽어야 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운명에 대해서 아는 것도 없었고 또 그 신비를 이해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베드로가 생각하고 고백한 그리스도상과 당신의 수난과 부활을 예고하시는 예수님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니 꾸지람을 들을 만합니다. 베드로가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여 이해하려고 하기보다는 인간의 바람을 내세우려 했다는 것은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세주로 고백하면서도 사실은 ‘그분이 원하는 나’를 추구하기보다는 ‘내가 원하는 주님’을 만들고 있으니 말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라면 그에 걸맞은 모습, 제자다운 모습을 갖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참으로 많은 약점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그것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데 걸림돌이 되기도 합니다. 특별히 성직자나 수도자의 허물은 용납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하느님은 그의 약점까지도 당신의 일을 하는 데 쓰십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을 생각하여 이런저런 흉을 보거나 잘못을 들춰내어 그리스도의 길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은 항상 일하시나 조용히 하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얼마나 말이 많은지?”(아우구스티누스). 하느님께서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당신의 일을 하십니다. 그러나 인간을 도구 삼아 하십니다. 부족함도 많고 허물투성인 인간의 협력을 통해서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 순간, 하느님께서 나를 통해서 무엇을 이루시고자 하는지 살펴야 합니다. 내 바람을 내세우지 말고 주님의 뜻을 찾는 일을 하시길 바랍니다. 내 뜻에 꿰맞추려 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사탄’이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굳건히 서서 흔들리지 말고 언제든지
주님의 일을 열심히 하십시오. 주님을 위해서 하는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1고린15,58).
반영억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