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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송영진 신부님_『“내게서 물러가라.”는 “내 뒤로 가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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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4-08-08 조회수50 추천수2 반대(0) 신고

 

 

“그때부터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반드시 예루살렘에 가시어

원로들과 수석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흗날에 되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밝히기 시작하셨다.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하기 시작하였다. ‘맙소사, 주님! 그런 일은

주님께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마태 16,21-23)”

 

1) “내게서 물러가라.” 라는 말씀을

원문대로 직역하면 “내 뒤로 물러가라.”입니다.

이 말씀은, “제자의 본분을 지켜라.” 라는 뜻입니다.

<베드로 사도를 쫓아내신 말씀이 아닙니다.>

제자의 본분은 스승이신 예수님께서 가시는 길을

그대로 뒤따라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면 ‘반석’이 될 수 있지만, 앞에서

가로막거나 거치적거리면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 사도를 ‘사탄’이라고 부르신 것은,

그가 마귀 들렸다는 뜻도 아니고, 마귀의 유혹에 넘어갔다는

뜻도 아니고, 그의 행동이 사탄의 행동과 같다는 뜻입니다.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라는 말씀도 “앞에서 가로막지

말고 내 뒤로 가서 나를 따르기만 하여라.” 라는 뜻입니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라는 말씀은,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인간적으로만 판단하지 말고,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믿음으로’ 따라라.” 라는 뜻입니다.

지금 예수님의 말씀들은, 베드로 사도를 꾸짖으시는

말씀이긴 한데, 그를 사탄의 유혹에서 지켜 주기 위한

‘사랑의 말씀’이기도 하고, 그가 흔들림 없는 ‘반석’이

되기를 바라는 심정을 나타내신 말씀이기도 합니다.

 

2) 비슷한 장면이 최후의 만찬 때에도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당신 손에

내주셨다는 것을, 또 당신이 하느님에게서 나왔다가

하느님께 돌아간다는 것을 아시고, 식탁에서 일어나시어

겉옷을 벗으시고 수건을 들어 허리에 두르셨다. 그리고

대야에 물을 부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고, 허리에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 시작하셨다. 그렇게 하여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자 베드로가, ‘주님, 주님께서

제 발을 씻으시렵니까?’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하는 일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지만 나중에는 깨닫게 될

것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그래도 베드로가 예수님께 ‘제

발은 절대로 씻지 못하십니다.’ 하니,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않으면 너는 나와 함께

아무런 몫도 나누어 받지 못한다.’(요한 13,3-8)”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점도 같고,

그 일을 가로막으려고 했다는 점도 같습니다.

여기서 “너는 나와 함께 아무런 몫도 나누어 받지 못한다.”

라는 말씀은, 뜻으로는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라는 말씀보다 더 엄한 꾸중입니다.

이 말씀은 “내가 하는 일을 막으면 너는 더 이상

내 제자가 아니다.” 라는 뜻입니다.

<베드로 사도뿐만 아니라 다른 사도들도 ‘예수님을 참으로

따르는 제자’가 되기까지 많은 과정들을, 즉 복잡하고

어렵고 힘든 고비들을 많이 넘겼습니다.

그런 과정들을 모두 극복하고 이겨냈기 때문에

위대한 사도들이 될 수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또는 어느 날 갑자기 위대한 사도들이 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 여정도 마찬가지입니다.>

 

3) 방금 전에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마태 16,17).” 라는 축복의 말씀을 들었고,

교회의 반석으로 임명받았고, 하늘나라의 열쇠도 받았던

베드로 사도인데(마태 16,18-19), 어떻게 금방 그렇게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라고 혼나는 상황이 되었을까?

누구에게나 그 상황은 인간적으로는(‘살과 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부르심과 응답의 관점에서 그 일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 16,16).” 라고 신앙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느님께서 특별히 그를 선택하셔서 그에게

계시를 내려 주셨고, 베드로 사도가 그 계시를 믿었기

때문에 이루어진 일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설명에 근거를 둔 말입니다.)

자신에게 내려진 계시를 믿은 것은 곧

부르심에 응답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응답은 그 당시에는 ‘머리로만’ 한 것이고,

아직 ‘삶으로는’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수난 예고 말씀을 하실 때,

또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실 때,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말리려고 한 것입니다.

믿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고 믿는 대로

사는 것이 믿음입니다.

마찬가지로 ‘응답’도 ‘머리’가 아니라, 또 ‘말로만’이 아니라,

‘삶’으로 해야 합니다.

온 삶을 다 바쳐서, 온 마음을 다하여 예수님의 뒤를

따라갈 때, 그때 비로소 응답이 완성됩니다.

<사도 직무 수행뿐만 아니라, 모든 신앙인들의 신앙생활은

그 자체가 곧 부르심에 응답하는 생활입니다.

생각만 하는 것, 또는 말만 하는 것은 신앙생활이 아니고,

온 마음과 삶을 다 바쳐서 끝까지 충실하게 사는 것,

그것이 신앙생활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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