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사소한 것보다는 큰 것에다가 / 연중 제19주간 월요일(마태 17,22-27) | |||
---|---|---|---|---|
이전글 | ■ 인생에서 친구란? / 따뜻한 하루[457] |1| | |||
다음글 | 엘리사의 매일말씀여행(마태 17,22-27/연중 19주간 월요일) | |||
작성자박윤식 | 작성일2024-08-11 | 조회수79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사소한 것보다는 큰 것에다가 / 연중 제19주간 월요일(마태 17,22-27) 우리가 자주 하는 말 가운데 ‘사소한 것에 목숨까지는 걸지 마라.’라는 이야기가 있다. 아마도 큰일을 하려면 사소한 일에 걸려 일을 그르치는 때가 종종 있기에 그럴게다. 우리가 살면서 여러 문제에 부딪힐 때에 무엇이 본질인지를 묻는 게 중요하다. 우리 삶에서 중요한 가치는 반드시 지켜야하겠지만, 사소한 것의 이해관계는 꼭 굳이 지키지 않아도 될게 있을 것이리라. ‘어느 날 성전 세 거두는 이가 베드로에게 다가와 ‘당신 스승님은 성전 세를 내십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시몬아, 너는 내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세상 임금들은 자기 자녀들께도 세금 거두느냐?’라고 물으셨다. 베드로의 ‘남들에게만.’이라는 답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그렇다. 자녀들은 면제다. 그들을 비위를 건드릴 건 없으니, 낚시를 던져 고기를 잡아 입을 열어봐라. 그러면 스타테르 한 닢이 있을 게다. 그걸 우리 몫으로 주어라.”’ 예수님은 성전 세 납부 문제로 논란이 일어났다. 당시 스무 살 이상의 유다의 남자들은 성전 세를 낼 의무가 있었기에. 먼저 예수님께서 세상 임금들이 세금을 자녀들에게도 거두느냐고 질문하시자, 베드로는 남들에게서만 받는단다. 물론 예수님도 자녀들은 세금을 면제받는다나. 이는 예수님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니, 그분께 성전 세를 낼 필요가 없다는 의미이리라. 사실 예수님은 성전의 주인이시기에 내실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성전 세를 내라신다. 불필요한 오해로 큰 뜻인 구원 계획이 감히 어긋나는 것을 원치 않으신 게다. 이 대목에서 예수님의 신중하심에 감탄이 절로 인다. 당시 임금들은 이방인들에게서 세금을 거두었다. 그렇지만 성전 세를 내라는 재촉을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들로서 하느님 집을 위한 세금을 내실 필요가 없음을 잘 알고 계시면서도 당신의 특권을 내세우지 않으셨다.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매우 신중하게 물의를 일으키지 않으시면서, 필요한 세금을 마련하시려고 권능을 이용하셨다.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가치는 없다. 그리하여 십자가 죽음과 삼일 만의 부활을 위해 덜 중요한 가치를 희생하신다. 이처럼 예수님은 사소한 일로 비위를 건드려 마찰을 빚고 싶지 않으셨다. 그래서 베드로에게 호수에 가서 고기를 잡아 그 속에서 은전을 꺼내 세금을 내라신다. 그분의 말씀 한 마디 한 마디는 이렇게 기적 같은 이야기뿐이시다. 어째서 낚시로 잡은 고기에 성전 세 한 닢이 들어 있을까? 이는 예수님께서 성전 세 몇 푼을 내려고 기적을 베푸셨다는 뜻이 아니다. 이는 성전 세를 내려고 나름대로는 일들을 하라는 뜻일 게다. 고기를 잡아 팔면 세금 낼 돈이 생기다나. 이를 예수님께서는 고기를 잡아 팔아서 그 돈을 세금으로 충당하라고 이르셨을 게다. 따라서 우리 역시 각자의 직업에 먼저 충실하자. 신성한 노동을 통해서 하느님에 대한 의무를 다하도록 더욱 노력해야 하겠다. 예수님의 이러한 지혜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무언가 일러 주는 바가 매우 크다 하겠다. 우리는 얼마나 기만하는지. 실로 많은 이가 사소한 일로 다툰다. 그 다툼의 대부분은 서로 이기려 인격을 무시하면서까지 고성도 지른다. 정녕 자신의 정당함을 증명하고 상대방이 이를 승복한다고 해서 결코 행복해지지는 않을 게다. 나의 이 작은 승리가 정녕 행복을 안기지 아니리라. 예수님은 끝내 우리를 사랑하셨다. 작은 것 같지만 너무나도 크신 그 사랑을 진하게 느끼면서 그분께 늘 감사드리자.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