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이수철 신부님_모두가 은총이요 선물이다 | |||
---|---|---|---|---|
이전글 | 이전 글이 없습니다. | |||
다음글 | 이영근 신부 강론 2024년 8월 23일 연중 제20주간 금요일 | |||
작성자최원석 | 작성일2024-08-20 | 조회수103 | 추천수6 | 반대(0) 신고 |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오늘은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 기념일입니다. 참으로 불가사의한 성인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한 성인안에 무궁한 능력이 담겨 있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아마 교회 역사상 최고의 성인이라 해도 좋을 듯 합니다. 정말 신화적이고 전설적 인물입니다. 하느님의 참 좋은 은총의 선물이요,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함을 보여준 성입니다. 그래서 오늘 강론 제목은 “모두가 은총이요 선물이다,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로 정했습니다. 이제부터 성인의 감동적인 일화를 소개합니다.
1.스콜라학파 이전의 신학자이며, 때로는 “마지막 교부”로 불리는 베르나르도 성인은 알레타 복녀의 아들로 프랑스 퐁텐에서 일곱 아들 가운데 셋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1107년 어머니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고 수도생활을 추구하게 됩니다. 그는 어머니를 떠나 보냈어도 그 존귀한 여러 말씀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며 잠시도 잊은 때가 없었습니다.
2.그는 1111년 그의 나이 20세에 집을 떠나 다섯 형제와 두명의 삼촌과 30명의 친구들을 데리고 시토 수도원에 들어갑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그들 일행이 집을 떠날 때, 아버지의 슬하에 남게 된 막내동생 니발도를 보고 “우리는 모두 수도원에 들어가므로, 이 성이나 영토와 아버지의 모든 재산을 모두 너의 것이 되는 거야.” 말하니까, 니발도는 “형님들은 천국의 재산의 상속자가 되는데, 나는 다만 이 세상 재산의 상속자 밖에 못되니 생각할수록 분한 노릇입니다.” 대답했다 합니다.
3.수도원에 들어온 베르나르도는 매일 아침 “베르나르도야, 너 무엇하러 여기 왔느냐(Ac quid venisti)?”는 글씨를 앞에 놓고 자신을 격려하며 자신의 의무를 상기했다 합니다.
4.이 열성적인 젊은이는 타인에게보다도 자기 자신에게 많은 요구를 했고, 쇠약해진 몸이 그들 더욱 끈기있고 이해심 있게 만들었습니다. 그 골짜기는 얼마후 클레르보, 즉 빛의 골짜기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그는 주교의 선거나 여러 교리 및 사목논쟁에 대한 화해 조정등 중대한 교회의 문제등 그가 관계치 않은 것은 거의 없을 정도로 유럽의 가장 영향력있는 인사가 되어 통치자와 교황의 자문을 담당하기도 했습니다.
5.베르나르도는 초청을 받고 이에 응할수 없는 경우는 종종 그 교회에 서한을 보내어 훈계나 충고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와같은 서한중 지금까지 보존해 내려온 것이 500여통에 달하며, 어느것을 봐도 그의 경건과 신심, 교회를 염려하는 마음에 누구나 감동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는 명령받은 임무를 완성하면 늘 마치 그리운 고향에 가는 것처럼, 클레르보에 부지런히 돌와와서 수도생활에 골몰했습니다.
6.그가 수도원에 돌아올 때는 반드시 새로운 지원자들을 데리고 오는 것이 상례였습니다. 그리하여 클레르보의 수도자 수는 점차 증가되어 그의 임종시에는 약7백명에 이르렀습니다. 자신에 대해서는 추상같이 엄격하던 그도, 제자들에 대해서는 봄날처럼 온순히 대하며. 자신의 깊은 신비적 체험에서 베풀어지는 건강한 영적지도는 누구나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밤에도 기도했는데 동료수사들도 밤에 깨어 함께 기도했습니다. 그는 수도원을 지혜롭게 잘 다스렸으며, 특히 수도규칙을 엄중히 보전해 나가려고 무진 애를 썼습니다.
7.그의 일생은 성모님께 대한 깊은 신심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성모님에 대한 그의 설교와 저서들은 마리아 신학의 기초가 되고 있습니다. 성인의 감동적인 권고 말씀입니다.
“위험과 의심과 어려움에서 성모님을 생각하고 성모님을 부르십시오. 그분의 이름을 계속 부르시오. 그분의 발자취를 따르는 것을 소홀히 하지 마시오. 성모님의 안내를 받으면, 당신은 결코 길을 잃지 않을 것이오. 그분이 당신 마음 속에 계신 한, 당신은 현혹되지 않으며, 그분이 당신 손을 잡아 주시는 한, 당신은 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분의 보호를 받는다면 당신은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만일 그분이 당신에게로 걸어오신다면, 당신은 권태롭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그분이 당신에게 호의를 보이신다면 당신은 목표에 도달할 것입니다.”
8.로마교황청은 베르나르도에게 전유럽의 제2십자군들에게 설교하도록 설득했습다. 그의 설교는 너무도 열광적이어서 대부대가 모였고, 마치 십자군의 승리가 확실한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군인과 지도자들의 이상은 베르나르도 아빠스의 이상과는 달랐고, 십자군 계획은 완전한 군사적 파멸과 윤리적 타락으로 끝이 났습니다. 그는 여러면에서 책임을 느꼈고 이 무거운 부담이 그의 죽음을 재촉하여 그는 1153년 8월20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8.그는 세기의 위인, 세기의 골키퍼, 세기의 화해자, 세기의 정당한 공격수, 교황의 조언자, 신앙의 옹호자, 분열의 치료자, 수도원의 개혁자, 성서학자, 신학자, 웅변적인 설교자등 너무 많은 이름으로 불리는 12세기의 위대한 인물,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늘 은둔하는 수도생활로 돌아가고자 하는 열망을 품고 살았습니다.
9.감미로운 학자, 성 베르나르도는 “꿀처럼 단 박사”(Doctor Melifluus)란 칭호와 더불어 교황 비오 8세에 의하여 교회박사로 선언되었고, 그의 문장은 꿀벌통이고, 양봉업자의 수호성인입니다.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의 위대한 생애를 대략 살펴 봤습니다. 정말 하느님이 아니곤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하느님의 참 좋은 은총이자 선물인 성인이요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함을 보여주는 성인입니다. 오늘 복음은 어제 부자의 추종 거부에 계속 이어집니다. 바로 부자의 구원은 어렵다는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부자는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려울 것이다. 내가 다시 너희에게 말한다. 부자가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 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요약하면 부자의 구원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의 너무나 자연스런 반응이, “그렇다면 누가 구원 받을 수 있는가?”입니다. 이어지는 주님의 다음 말씀이 우리에게는 희망이 원천이 됩니다. “사람에게는 그것이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있어도 내것이라 생각하지 않고, 하느님 주시는 회개의 은총으로 마음이 너그럽고 자비롭고 열려있어 재물을 아낌없이 나눌수 있는 부자라면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이고 우리는 가끔 이런 부자들을 목격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모든 것이 은총이요 선물임을 깨닫는다면,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함을 깨닫는다면, 저절로 나누고 겸손할 수 뿐이 없을 것입니다. 저절로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의 응답뿐이겠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제1독서의 티로 임금은 참 교만합니다. 하느님을 모르는 무지의 교만에는 답이 없습니다. 하느님 없이는 회개도 겸손도, 찬미도 감사도 없습니다. 티로 임금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입니다.
“너는 마음이 교만하여, ‘나는 신이다. 신의 자리에, 바다 한가운데 앉아있다.’하고 말한다. 너는 신이 아니라 사람이면서도, 네 마음을 신의 마음에 비긴다....너는 무참한 죽음을 맞이하리라. 너는 이방인들의 손에 넘겨져 죽음을 맞이하리라. 주 하느님의 말이다.”
우리의 눈을 멀게 하는 무지의 탐욕, 무지의 교만입니다. 하느님의 심판이기보다는 자신의 무지로 인해 스스로 자초한 심판이라 함이 맞습니다. 주님은 '첫째가 꼴찌되고 꼴찌가 첫째 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은총의 선물에 한결같이 찬미와 감사로 응답하는 겸손한 삶이라면 그 삶 자체가 이미 구원의 축복이요 늘 첫째의 삶일 것입니다. 미래는 전혀 걱정 안해도 될 것입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이렇게 살도록 도와주십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