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십자가의 길은 영원한 생명의 길 / 성 십자가 현양 축일(요한 3,13-1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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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 작성일2024-09-13 | 조회수44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십자가의 길은 영원한 생명의 길 / 성 십자가 현양 축일(요한 3,13-17) 그리스도인을 드러내는 가장 확실한 상징은 십자가이다. 십자가는 예수님의 죽음의 장소이기도 하지만 또한 새로운 생명이 탄생한 자리이기에. 따라서 우리는 이 십자가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깊이 묵상해 보아야 한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우리에게 구원이 주어졌음을 장엄하게 고백한다.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 안에 영원한 우리 생명이 있음을 깨달아야 할 게다. 그러기에 오늘 이 ‘성 십자가 현양 축일’은 인류의 죄를 속죄하시려고 예수님이 손수 지신 그 무거운 십자가를 경배하는 날이다. 사실 이 기원은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 성녀의 노력으로 찾게 되었단다. 황제는 이를 기념하고자 335년 무렵 예루살렘의 예수님 무덤 곁에 성전을 지어 봉헌하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9월 14일로, 이 축일이 고정되었단다. 성당 어디에나 큰 십자가는 있다. 물론 작은 십자가는 집집마다 걸어둘 게다. 목걸이와 반지에도 십자가를 새긴다. 그러나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하면 그것은 정작 장식에 지나지 않는다. 십자가는 고통, 시련, 억울함이며 마침내 구원이다. 예수님께서 받아들이셨기에 우리 역시 그렇게 하고자 십자가를 모시는 거다. 그래서 이 십자가를 이해 못하면 ‘불평불만’만 하게 되리라.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의회의원인 니코데모에게 말씀하셨다.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사람의 아들 말고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믿는 이는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이처럼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당신 십자가로 구원을 암시하셨다. 십자가의 길은 믿는 이를 영원한 생명인 구원으로 이끌어 하느님 영광을 드러내자는 거다. 예수님도 그 길을 걸으셨다. 그 끝인 죽음이 모든 것을 잃은 것처럼 보였지만, 하느님께서는 모든 걸 바치신 예수님께 부활로 응답하셨다. 예수님의 인간적인 패배는 곧 하느님의 승리였다. 십자가 길은 손해 보는 게 아닌 구원으로 이끄니까. 하느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 그리고 모든 건 끝내는 그분께로 돌아간다. 사실 외아들을 죄 많은 우리에게 보내신 건, 그분께서는 세상이 심판이 아닌 오로지 아드님을 통해 구원받게 하시려는 그분 사랑 표현이었다. 어쩌면 인간의 죄와 불순종으로 생긴 십자가의 예수님 상처가 하느님의 한없는 사랑을 드러내고, 인간을 새롭게 창조하는 근원이다. 내 앞에 십자가가 없다면 우리는 하느님 창조 사업에 참여하는 이가 아니다. 따라서 십자가를 지고 새로운 하느님 자녀를 탄생시키는 역할에 참여할 때에야, 진정한 십자가 현양이 이루어질게다. 오늘도 교회가 탄생하기 위해서도 어쩌면 피 흘림이 필요하다.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십자가 죽음이 요구되었기에. 그분께서는 옆구리를 창으로 찔려 피와 물을 쏟으셨다. 이 십자가의 어리석음이 하느님의 지혜가 되고 그 고통은 하느님 영광과 기쁨으로 드러난다. 믿는 우리들은 십자가를 곳곳에 걸어 놓고 있다. 성 십자가 현양 축일을 지내는 오늘도 십자 성호를 긋거나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거기에 담긴 영원한 생명인 구원의 길을 함께 묵상해보면 참 좋겠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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